격변과 혼란의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중요하고 복합적인 인물로 여겨지는 영국의 문인, 그레이엄 그린의 장편소설. 『브라이턴 록』, 『권력과 영광』, 『사건의 핵심』에 이은 네 번째이자 마지막 가톨릭 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그린의 방대한 저작 목록 가운데서도 특히 문학적으로 주목받는 이들 가톨릭 소설은 인간과 신의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 속에 복합적인 내면의 욕망과 고뇌, 신앙적 갈등이 빼어나게 그려진다고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소설가인 주인공이 ‘나’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1인칭 시점의 소설이다. 그린은 제2차 세계대전 무렵의 런던을 배경으로, 소설가 모리스 벤드릭스와 유부녀 세라 그리고 세라의 남편인 헨리 마일스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과 이별, 기묘한 우정을 주인공 화자의 시선을 통해서 섬세하게 포착한다.
격변의 20세기 거의 대부분을 살면서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로 시대와 인간을 기록했던 영국의 문인 그레이엄 그린은 세계 문학사에서 20세기의 가장 중요하고 복합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때 공산주의에 공명하고, 세계대전 중에 MI6(비밀정보부)에서 첩보원으로 활동했으며, 국교회가 지배적인 나라에서 가톨릭교로 개종하는 등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던 그는 당대에 폭발적인 대중의 인기와 문단의 찬사를 동시에 누린 희귀한 작가이다.
그린은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학창 시절 괴롭힘과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몇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의 한 방편으로 권유받은 글쓰기는 그린에게 있어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자기 구원의 방식이자 실존의 문제가 된다. 《더 타임스》에서 편집 기자로 일하던 1929년, 그린은 첫 장편소설 『내부의 나』로 호평받자 신문사를 사직하고 창작에 전념한다. 그러나 이어 출간한 작품들이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면서 좌절에 빠졌다가 대중소설 『스탐불 특급열차』를 발표하면서 다시 명성을 얻는다. 이후 그린은 ‘스릴러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순수문학과 ‘고도로 윤리적이고 심미적인’ 오락물 등 장르의 경계를 초월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임으로써 20세기 스토리텔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