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과 『눈먼 자들의 도시』의 세계적인 거장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활동 초기에 문학적 명성을 공고히 해준 작품으로, 공화국이 들어선 20세기 초부터 무혈 혁명이 일어났던 1974년 4월 무렵까지 포르투갈 남부 알렌테주의 가난한 소작농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다.
노동자 계급 출신이면서 독재 정권에 반대해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사라마구의 이 작품은, 소작농이었던 그의 조부모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 사라마구는 우파 정권의 독재자 살라자르의 오랜 집권 아래 지속되어온 대지주들과 소작농들의 갈등 속에서 억압에 저항하는 인간과 소외 계층의 삶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는 폭풍우가 몰려오는 포르투갈 남부의 어느 시골길에서 시작된다. 떠도는 운명을 짊어진 제화공 도밍구스 마우템푸와 그의 아내 사라 다 콘세이상, 파란 눈의 아기 주앙이 새로 이사할 집으로 힘겹게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이어질 마우템푸 일가의 험난한 여정을 암시한다. 아버지 도밍구스가 목숨을 끊고 어머니 사라가 미쳐버리며 아내가 귀먹는 동안 그들과 마찬가지로 감옥에 수감되고 고문당하며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주앙 마우템푸의 이야기는 소설이지만 꽤나 가혹하다.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라마구는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사라마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1982년작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왔다.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세계의 수많은 작가를 고무하고 독자를 매료시키며 작가 정신의 살아 있는 표본으로 불리던 그는 2010년 여든일곱의 나이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