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던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기사를 본 것이 몇 해 전이었다. 그날 나는 집에서 나와 말 그대로 정처 없이 걸었다. 걷다 보니 내가 살았던 동네였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서점이었다. 그날 서점에는 어딘지 쓸쓸해 보이고 무언가를 찾는 듯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동안 서점에 오고 가던 추억을 풀어놓으며 서점 주인에게 인사를 하러 들른 사람들이었다. 나는 디귿자 책장 구석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다가 뜻밖에도 당혹스런 기억과 마주하게 되었다.
벽에는 삼십 년 전 상연되었던 연극 포스트가 붙어 있었다. 그 연극을 보지는 못했지만 포스터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할 말을 찾지 못하던 열일곱의 내가 떠올랐다. 그러자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연극을 같이 보자고 했던 그 애도 딸려 나왔다. 도대체 이 작은 서점은 내게 무엇이었을까. 얼마나 많은 기억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날부터 한 달 동안 직원처럼 매일 서점을 드나들었다.
나는 하루에 딱 하나만 이 서점이 좋았던 점을 적어나갔다. 하루종일 책을 봐도 눈치를 주지 않았던 것, 오로지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책을 읽다가 지겨울 땐 서점에 온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것, 그들의 꿈이나 일상을 엿들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던 것, 외로울 땐 아무 말 안 하고 고독할 수 있었던 것, 책을 안 사고도 그냥 나올 수 있었던 것, 책을 읽을수록 이상하게 더 고독해졌던 것. 좋았던 것들은 날마다 쌓여갔다. 그리고 한 달이 다 되어갈 때 나는 이렇게 적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가도 그곳에 이 서점이 있었던 것. 이 서점을 드나들 땐 내가 소설가가 될지 몰랐지만 막연하게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시작이 이 서점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제야 이 소설의 첫 문장이 시작되었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2014년 『나무에게서 온 편지』로 전태일문학상, 2016년 조영관 문학창작기금을 받았으며, 2019년 『불편한 온도』로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 백신애문학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와 소설집 『불편한 온도』 『고요는 어디 있나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