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1일 : 37호
개복치의 학명을 아십니까?
<저주토끼> 정보라의 연작 SF가 출간되었습니다. 정보라 작가의 인물들 하면 역시 '저주'라는 행위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작가는 2023년 초 환상문학 단편선 <아무도 모를 것이다> 출간 시 알라딘의 질문에 스스로가 '복수 전문 작가'가 아니라고 대답해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원한을 품고, 저주하고 복수하는 이야기가 아닌,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정보라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 이 소설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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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정보라의 연작 SF가 출간되었습니다. 정보라 작가의 인물들 하면 역시 '저주'라는 행위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작가는 2023년 초 환상문학 단편선 <아무도 모를 것이다> 출간 시 알라딘의 질문에 스스로가 '복수 전문 작가'가 아니라고 대답해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원한을 품고, 저주하고 복수하는 이야기가 아닌,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정보라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 이 소설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소설은 정보라 작가의 현실의 삶을 기반으로 한 자전적 / 연작 / SF입니다. '싸워보지도 않고 학교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사라져줄 수는' 없어서 대학가에서 농성하는 강사들의 이야기인 첫 작품 <문어>서부터 대학에서 강사로 오래 일했고, 현재는 퇴직금 지급 관련 소송중인 실제 작가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합니다. 개복치의 학명은 몰라 몰라(Mola mola)라는 말을 기어이 참지 못하고 하고 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연덕스럽고 싱거운, 너무 열이 받아서 싸우고, 진심이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존재들이, 사랑해서 이곳의 삶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이서는 순간이 묘하게 낭만적입니다. '죽도시장 대게집에서 러시아산 대게가 러시아어로 말을 걸어온다' 같은, 초현실적인 장면에서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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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쪽 :
"여러분은 지금 불법 집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불법을 저지르고......"
"불법(佛法)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지하러 결의대회에 찾아오신 스님이 경찰 버스를 바라보며 불만스러운 얼굴로 투덜거렸다. 집회는 대체로 이런 식으로 혼란의 도가니다.
Q :
신간 <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은 2000년대 이후로 태어난 이들은 '희망을 모르는 세대'로 함께 묶이곤 했다(11쪽)는 설정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학창 시절부터 10년을 품어온 이야기라고 하셨는데요, '희망을 모르는' 상태로도 기억하며 나아가는 이야기를 품게 된 마음이 궁금합니다.
A :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했지만, 처음부터 재난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라면서 제 또래인 수백 명이 이유 없이 희생되는 걸 두 번이나 목격했어요. 10대 때 한 번, 20대 때 한 번. 그래서 재난에 대한 감정이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고요. 가장 오래되어 소중한 이야기였기에 가장 큰 관심사를 향해 저절로 방향을 틀었던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 9주기가 막 지났을 때 제 노란 리본을 보고 대학 동기가 별일 아니라는 듯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말했던 게 기억에 있어요. 연재 원고료 일부를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에 기부했을 때 대놓고 “난 그 사람들(유가족)이 싫다”고 말한 지인도 기억에 남아 있고요. 그 사람들을 매도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땐 ‘아, 이게 정말 보통의 반응이구나’하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는 실망하지 않으려고, 기억과 애도가 유난스럽지 않은 이야기를 적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후일은 제대로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재난을 목격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자 가장 거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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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신간 <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은 2000년대 이후로 태어난 이들은 '희망을 모르는 세대'로 함께 묶이곤 했다(11쪽)는 설정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학창 시절부터 10년을 품어온 이야기라고 하셨는데요, '희망을 모르는' 상태로도 기억하며 나아가는 이야기를 품게 된 마음이 궁금합니다.
A :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했지만, 처음부터 재난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라면서 제 또래인 수백 명이 이유 없이 희생되는 걸 두 번이나 목격했어요. 10대 때 한 번, 20대 때 한 번. 그래서 재난에 대한 감정이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고요. 가장 오래되어 소중한 이야기였기에 가장 큰 관심사를 향해 저절로 방향을 틀었던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 9주기가 막 지났을 때 제 노란 리본을 보고 대학 동기가 별일 아니라는 듯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말했던 게 기억에 있어요. 연재 원고료 일부를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에 기부했을 때 대놓고 “난 그 사람들(유가족)이 싫다”고 말한 지인도 기억에 남아 있고요. 그 사람들을 매도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땐 ‘아, 이게 정말 보통의 반응이구나’하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는 실망하지 않으려고, 기억과 애도가 유난스럽지 않은 이야기를 적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후일은 제대로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재난을 목격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자 가장 거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Q :
문학웹진 LIM에서 연재된 작품인데요, 매 편이 실시간 공개된다는 점에서 색다른 경험이었을 듯합니다. 연재 당시의 에피소드 등이 궁금합니다.
A :
대학을 다니던 중에 연재를 제안 받아서 처음엔 수락해야 할지, 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습니다. 계속 우려를 표하니 연재 제의를 보내주신 천선란 작가님께서 밥을 사주며 저를 설득하시는 거예요. 결국 집필 일정을 재정비하고 작품의 모든 분량을 써낸 뒤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죠. 주간 연재였음에도 지각이나 휴재가 없었던 비결(?)이랍니다. 두 번의 방학을 전부 『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에 쏟아부었어요.
연재가 한창이었던 게 2023년 1학기였는데요. 문학웹진 LIM의 경우 오전 10시에 작품이 업데이트 돼요. 근데 저는 그때 아침 수업이 있었고…. 심지어 목요일 1교시는 전공 4학년 과목인 핵물리였는데, 교수님이 제 상담교수님이시기도 해서…. 매주 수업시간마다 교수님 눈치를 보며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만지작거렸어요. 이번 화 업데이트 됐다고 SNS에 공지하고, 하루는 너무 눈치 보여서 화장실 가는 척 하고 복도에서 확인하고. 그래서 핵물리 학점은 어떻게 됐냐고요? 그 학기에 교수님께 상담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이야기가 반전되는 지점마다 독자 분들이 비명을 질러주시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반응이 가장 즐거웠던 날은 1부 마지막 부분과 3부 마지막 부분이 업데이트 되던 날!
Q :
‘하드 SF'라는 장르를 궁금해하고, 낯설어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장르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지, 이 장르의 매력에 대해 '영업'이 가능할까요?
A :
일단 하드 SF에 대한 정의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 이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과학적 태도가 작품에 깊게 관여하는 SF’라고 생각합니다. 과학 지식이나 과학적 사실, 고증 정도와는 관계 없이요.
만약 하드 SF가 낯설다면, 그건 과학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 문법을 체득하기 위해서 각종 과학 전공이 대학에 개설되어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요, 하드 SF의 설정이 너무 어렵다면, ‘그런가보다! 그런 게 있나보다!’하고 넘어가시면 됩니다. 정말로요. 우리는 픽션을 공부하려고 읽는 게 아니잖아요? 철학에 무지한 제가 소설을 읽다가 변증법을 마주친다고 헤겔을 공부하진 않듯이요. 그저 정교한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시면 될 뿐입니다. 그게 바로 하드 SF의 매력이고요.
아, 그리고. 치트키를 하나 알려주자면…. 아무리 하드 SF라도 그 설정을 이루는 체계는 고등학교 과학 교과 수준에서 모두 성립이 가능합니다. 과학 전공자가 보기에 하드 SF조차도 대부분은 과학적 판타지(Scientific Fantasy)고요. 그러니 너무 두려워 마시고, 부디 사고실험의 놀이터를 편히 즐겨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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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변덕스러워 건강 챙기기 어려운 나날입니다. 편지를 드리는 오늘은 1월의 마지막 날이고요, 이곳 날씨는 영상 10도입니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롱코트가 머쓱해지는 오후였습니다. 유독 눈이 잦았던 이 겨울이 드디어 끝이 보이는 것인지, 오늘은 이르게 봄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봄이면 찾아 읽는 계절 소설이 제겐 있는데요, (여름 소설 등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ㅎㅎ) 권여선의 소설 <봄밤>이 그것입니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라고 말을 거는 소설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삶에도 행운 같은 찰나가 지나가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는 방식이, 그 참혹하고 엄정한 눈이 마주할 때마다 새삼 사무칩니다. 봄밤을 기다리며 오늘은 권여선의 소설을 읽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인물의 생김새나 풍경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소설을 읽으시나요? 저는 단어의 추상적인 의미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글을 따라가는 편이에요. 하지만 만화를 그리는 제 친구는 소설을 읽을 때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글을 각자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영화를 만들던 사람이 소설을 썼을 때, 그 소설은 어떻게 읽힐까요?
『우리가 기대하는 멸망들』은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언어형 바이러스를 통해서 인류 문명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들을 없애 문명을 멸망시키겠다고요.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실망스러운 미래의 모양”들이요. 이야기 속에서 인류는 환경 파괴로 인해 지하로 숨어들거나, 복제인간들을 만들어 다른 행성을 개척하기도 하며 생존을 꾀합니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 우리에게 멸망의 순간들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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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인물의 생김새나 풍경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소설을 읽으시나요? 저는 단어의 추상적인 의미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글을 따라가는 편이에요. 하지만 만화를 그리는 제 친구는 소설을 읽을 때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글을 각자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영화를 만들던 사람이 소설을 썼을 때, 그 소설은 어떻게 읽힐까요?
『우리가 기대하는 멸망들』은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언어형 바이러스를 통해서 인류 문명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들을 없애 문명을 멸망시키겠다고요.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실망스러운 미래의 모양”들이요. 이야기 속에서 인류는 환경 파괴로 인해 지하로 숨어들거나, 복제인간들을 만들어 다른 행성을 개척하기도 하며 생존을 꾀합니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 우리에게 멸망의 순간들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전 출간작품이 없는 작가의 첫 소설집을 내자고 회사를 설득하는 건 지난한 일입니다. 그 누구도 독자의 반응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눈치를 보게 되거든요. 하지만 서강범 작가의 작품들을 읽었을 때 저는 이 책을 내자고 강력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은, 재밌었거든요. 수록작인 「감독님, 이 영화 이렇게 찍으면 안 됩니다」에서 저는 영상을 떠올렸습니다. 이 이야기가 비단 다큐멘터리와 기록에 대한 이야기여서만은 아닙니다. 대화하는 인물들을 비추고, 시선을 돌려 다른 장소를 클로즈업하고, 신이 끝나 장면이 전환되고, 그런 짧은 장면들이 쌓이며 복합적으로 진행되는 전개가 꼭 영화 같았습니다. 글이 평소와 달리 영상처럼 읽히는 건 무척이나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마침 현암사에는 SF를 비롯한 장르소설을 출간하는 달다라는 브랜드도 있으니 달다로 내면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강범 작가가 소설을 출간해 본 적은 없지만, 영화는 만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그렇게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받을 수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아마 그건 쓰는 사람이 구체적인 영상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이었겠지요. 표지를 작업한 디자이너는 원고를 읽으며 파편화된 조각들, 입자와 노이즈, 흑백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디자이너가 글을 받아들이는 방식일까요? 그렇다면 다른 분들은 이 소설에서 영화를 볼까요, 추상화를 볼까요? 어쩌면 만화를, 평소의 저처럼 글 그 자체를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읽고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 달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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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소설이라는 단어를 어떤 맥락으로 쓸까요? 구병모가 '소설 쓰기에 관한 소설일 수도 있으며, 소설 읽기에 관한 소설일 수도 있는', 소설을 읽고 나면 세계는 그대로일지라도 나는 변화하는, '단지 소설일 뿐'인 소설을 출간했습니다.
정세랑은 '가장 과감한 주인공에게 자주 붙이는 이름'인 '아라'라는 이름을 미니픽션의 등장인물에게 붙여주었습니다. 소설가가 된 어떤 아라는 "읽기 쉬운 소설이 얼마나 어렵게 쓰이는지 쉽게 쓸 수 있는 사람만 안다고 믿어왔다."고 말하는데요,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대면하는 이의 의지를 응원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