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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이름:김재영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최근작
2021년 9월 <비밀의 향기>

김재영 : 코끼리 The Elephant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창, 4부 디아스포라 문학을 기대합니다! I look forward to reading the “Diaspora Literature” series, Korean literature's newly opened window to the world.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최근 몇 년간 자꾸 다음 세대들의 안타까운 삶의 조건이 눈에 들어왔다. 청년실업, 비정규직, 삼포세대, 그리고 험한 죽음을 야기하는 이상한 국가의 잔인한 폭력……. 마땅히 사과받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이번 소설집을 엮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생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의 지푸라기 하나라도 건져 올리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 주변의 모든 존재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코끼리

봄날의 벚꽃과 초여름의 철쭉, 한여름 계곡과 가을날의 단풍은 말할 것 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하고 즐거웠다. 한편 계절과 계절 사이에 조심조심 생장하고 가만가만 갈무리하는,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견디는 풀과 나무들을 지켜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슬프고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비로소 숲의 내밀한 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순간 내 소설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쾌하고 농염하진 않지만, 달빛 속에서 도란도란 속내를 드러내는 살가움이라면. 아린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따뜻함이라면.

폭식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밤새 서리가 내리고 자동차 앞유리가 하얗게 얼었다. 나는 노모에게 전화했다. 김장을 아직 담그지 않았는데 배추가 다 얼어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귀가 어두운 노모는 전화로 괜찮다, 괜찮다, 살아 있으니 괜찮다, 같은 말만 되뇌었다. 농사경험 없는 내가 재미삼아 기른 배추지만, 그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배추들이었는데, 괜찮기는 뭐가 괜찮다고 그러시는 거야. 나는 속으로 불만을 품고 아이들 등교시키자마자 집에서 멀지 않은 작은 텃밭에 가보았다. 과연 서리 내린 밭은 처참해 보였다. 푸릇하던 겉잎은 이미 누렇게 시들어버린데다 차갑게 얼어 있어 언 김치를 담글 판이었다. 절기상으로 해월(亥月)이란 천지간에 따뜻한 양(陽) 기운은 하나도 없고 온통 찬 음(陰 )기운으로 가득할 때라고 했던가. 과연 그러하다 싶게 들판은 차갑고 황폐해 보였다. 방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닥친 초겨울 추위에 부르르 몸서리를 치며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신문 사이에 끼어 있는 할인점 광고지를 뒤적이며 배추 값을 알아보았다. 며칠 뒤 다시 날이 풀리고 햇살이 환하게 퍼지기에 나는 배추를 사러 가려다 말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밭에 나가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얼어 죽은 줄만 알았던 배추들이 멀쩡하게 살아 다시 푸릇푸릇,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호들갑을 떨며 기뻐하는 내게 노모는 여태 그것도 모르고 살았더냐, 그러기에 뿌리가 살아 있으면 괜찮다고 했잖아, 라며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긴, 살아 있기만 하면 언제고 다시 기회의 문이 열리곤 하는 게 인생인지 모른다. 절망의 가지 끝에 다시 희망이 고추처럼 오이처럼 열리듯이. 언 땅 밑에서 더운 기운을 퍼올려 다시 제 몸을 덥히고 살린 배추 뿌리를 새삼스레 바라보며 나는 또다른 의미의 뿌리를 떠올렸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먼 이국의 땅으로 떠났던 사람들. 끝내 자신의 언어와 문화적 뿌리를 잃지 않으려 애쓰던 디아스포라…… 그들의 삶, 그들의 웃음, 그들의 눈물. 이번 소설집에는 나 자신이 고국을 떠나 낯선 땅, 낯선 문화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보고 느낀 것들, 어려울 때 만나 정을 주고 아픔을 나눈 한인들의 이야기가 많다. 국경을 넘어 우리 사회 안으로 들어와 살아가는 이방인들도 만났다. 아낌없이 마음을 나누고 기꺼이 자신들 삶의 이력을 들려준, 아프게 속내까지 드러내 보여준 사람들이 새삼 보고 싶다. 그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역경을 딛고 끝내 살아남았기에, 제각각 가슴에 살아숨 쉬는 슬픔을 품고 있기에, 그래서 때론 더욱 뜨겁게 사랑할 수 있기에 아름다웠다. 내게 소설 쓰기란 인생을 알아가는 것과 같았다. 삶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놀라게 하고 아프게도 하지만, 그러기에 살아볼 만한 게 아닐까. 그러기에 소설로 담아낼 만한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닐까. 주제넘게도 요즘 나는 그렇게 느낀다. 삶을 견디고 살아가는 방식이 천태만상이라면, 그 삶을 담아내는 방식은 그보다 더 각양각색이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인간의 존재양식과 소설의 형식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소설가들은 아직 얼마나 행복한가. 나에게 행복한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도와준 분들이 너무 많다. 소설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이끌어주신 신상웅 교수님, 전영태 교수님을 비롯한 중앙대학교 여러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첫 창작집 해설을 써주신 인연으로 두 번째 창작집을 묶을 때까지 내내 소설을 봐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평론가 정호웅 선생님과 일상 속에서 귀중한 지혜를 나눠준 손세실리아 시인은 각별히 고맙다. 함께 고민하고 기뻐하며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선후배 문인들에게도 일일이 인사를 해야 마땅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한줄 평범한 글로 대신한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묵묵히 사랑과 믿음으로 지켜봐준 양가의 부모님들과 내 소설을 아껴준 형제자매, 친구 들의 도움 덕분에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동안 종종 자리를 비워야했던 나를 대신해 빈 곳을 채워주고 격려해주고 힘이 되어준 남편, 그리고 건강하게 지혜롭게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어떻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할까. 특별히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야겠다. 책을 묶기까지 함께 고민하고 애써준 창비 편집부 여러분에게도 감사의 마음 전한다. 나와 함께 지난 몇년을 함께 살아온 소설 속 인물들이 살갑다. 그들은 모두 내 안에서 살아숨쉬며 나와 함께 웃고, 울고, 비명 지르고, 살 부비고, 속삭였다. 그들을 독자에게 보낸다. 부디 행복한 만남으로 새롭게 태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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