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다자이 한 사람을 통해 지난 삼 년여 간 나를 스쳐 지나간 것들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고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던 날도 있었지만, 대개는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했다. 특히 즐거웠던 건 다자이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했을 때였다. 돌이켜 보면 번역을 하면서 유난히 참기 어려웠던 건 ‘술’이었다. 특히 9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술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술독에 빠져 사는 주인공들이 많이 나오는데, 문제는 나 역시 술의 유혹에 매우 약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번역은 하루에 문고본으로 서너 장 정도면 하루해가 꼴딱 다 갔기 때문에 오백 페이지가 훌쩍 넘는 전집 한 권을 끝내려면 하루 종일 꼼짝없이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다자이가 아침이고 낮이고 ‘마시자, 마시자.’ 하면서 나를 유혹했다. 꾹꾹 참다가 해가 지면 뛰쳐나가 허겁지겁 생맥주를 들이켜던 날들이 생각난다. -<인간 실격>, 옮긴이 후기에서
이번 전집은 세 역자들의 공동번역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수개월여에 걸친 끈질긴 교차 번역작업을 통해 정확성과 표현력을 높였다.
≪만년≫을 어떻게 읽을지는 순전히 우리의 자유에 달려 있지만, 한번쯤 진지하게 생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들이라면 그가 펼쳐놓은 안개 자욱한 감수성의 숲에 갇혀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보는 매혹적인 순간을 맛보게 될 것이다.
결과 위주의, 가치 중심의, 목표 지향적인 세계에 살면서, 한 발자국도 거기서 나오려 하지 않고, 아니 나오길 두려워하고, 아이들을 그 안으로 잡아끌면서, 거기 들어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영혼을 낙인찍는 어른들은 타히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무용의 놀이, 악몽의 늪, 검은 눈사람을 자꾸만 키워나가는 환영. 밤의 도시를 활보하는 괴물은 마을보다 지구보다 우주보다 커졌다가, 해가 뜨면 아무도 모르게 작아지길 반복한다. 타히의 시집은 우리에게 이런 어둠을 선사한 다. 밤을 선물한다. 고독이라는 꽃을 꽂은 미치광이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들은 모두 우연히 어느 시간의 고리에서 만나 친구가 되거나 연인이 되거나 지인이 되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인간이 있고 그중에서 누구를 만날지는 단순한 우연’이라는 나누크의 말을 굳이 곱씹어보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우리가 사는 이 별이 우연이라는 그물로 어른어른하지만 아주 촘촘하게 짜여 있다는 것을. Hiruko는 이제 자신이 만든 빛나는 언어의 그물 위에 선 친구들과 함께 바다라는 끝없이 출렁이는 세계로 나간다. 그리고 이들은 멈추지 않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입을 놀려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한다.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른 무엇보다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아카슈의 말대로 수다만큼 확실한 생명의 신호는 없다.
참고 견디느냐, 도망가느냐, 정정당당하게 싸우느냐, 혹은 거짓부렁 타협을 하느냐, 기만하느냐, 회유하느냐, to be, or not to be, 무엇이 좋을지, 나도 모르겠어. 모르겠으니 괴로운 거야. - 다자이, <신햄릿>
다소 소극적이면서도 무언가에 억눌린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청년 시절 다자이의 모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레어티스가 햄릿을 향해 퍼붓는 ‘니힐리스트, 난봉꾼, 겁쟁이, 울보’라는 말들도 세상이 다자이에게 퍼붓는 욕설을 연상시킨다. 다자이에게 있어 패러디는 사회 풍자나 비판적 기능을 갖고 있었다기보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대작 속에 자기 자신을 투영시켜 새로운 자기 탐구의 방편으로 삼고자 했던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적 유희’였다. - 해설
<인간 실격>(1948)의 싹은 십여 년 전부터 다자이의 마음속에 움텄는데, 그는 1936년에 한 달간 약물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HUMAN LOST」(1937)를 써냈다. Paradise Lost(1667)를 흉내 내어 인간 실격이라고 해보면 어떨까 하는 심정으로 그런 제목을 붙였다는데(「철면피」, 전집9), Paradise Lost는 물론 국내에 <실낙원>으로 번역된 존 밀턴(1608~1674)의 대서사시다. 존 밀턴은 영국에서 왕권에 맞서 권리를 찾기 위해 무력으로 항쟁한 시민혁명이 한창이던 암울한 시대에 <실낙원>을 집필했다. 밀턴이 17세기 투쟁의 시대에 사탄의 유혹에 빠져 ‘낙원에서 추방당한 아담’을 그렸다면, 다자이는 20세기 전쟁이라는 거대 세력의 충돌 속에서 개인의 인간적인 삶이 말살당한 시대에 ‘인간계에서 추방당한 요조’를 그린 <인간 실격>을 집필한다. 낙원을 잃고 원죄를 떠안은 사람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인간 실격>의 요조가 사는 세상이자, 오늘날 인류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다. (-‘작품 해설’ 중에서)
“인간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잃어버리기 위해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탄생이 세상에 하나를 보태는 힘이라고 한다면, 죽음은 딱 그만큼을 세상에서 빼는 힘이다. 탄생은 플러스, 죽음은 마이너스. 본질적으로 우리는 플러스의 힘으로 이 땅에 내려와 마이너스의 힘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오랜만에 이 책을 꼼꼼히 읽으며, 인간의 본성은 결국 비겁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이 죄를 저지르고도 사탄의 유혹에 빠져 타락했다고 핑계를 대는 아담처럼, 요조는 그야말로 남의 핑계를 대며 시종일관 징징거리기 바쁘다. 내가 이렇게 타락한 건 약 때문, 일 때문, 호리키 때문, 여자 때문, 아버지 때문이야.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그 다음에 일어났다. 나는 요조가 지닌 그 추잡한 인간의 본성에 치를 떨면서도, 그 모습을 바로 나 자신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나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으며, (몇 십 년 동안 쭉 내 안에 있는 성질이었음에도) 어느새, 남 탓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인생을 살면서 나 이외의 다른 무언가를 탓하지 않고 살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오바 요조 덕에, 작가 다자이 오사무 덕에, 다행히 이를 터득하고 마흔을 맞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작가 본인은 생전에 맞이하지 못한 그 나이. 영영 물속으로 가라앉아 투명해진 시간…….
이미 많은 분들이 다양한 형태로 이 배려심 많은 작가가 베푼 서비스를 즐겨왔을 테지만, 그중 이 책도 여러분의 하강 비행을 함께할 소중한 무언가가 되길 바란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다자이 한 사람을 통해 지난 삼 년여 간 나를 스쳐 지나간 것들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고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던 날도 있었지만, 대개는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했다. 특히 즐거웠던 건 다자이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했을 때였다. 돌이켜 보면 번역을 하면서 유난히 참기 어려웠던 건 ‘술’이었다. 특히 9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술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술독에 빠져 사는 주인공들이 많이 나오는데, 문제는 나 역시 술의 유혹에 매우 약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번역은 하루에 문고본으로 서너 장 정도면 하루해가 꼴딱 다 갔기 때문에 오백 페이지가 훌쩍 넘는 전집 한 권을 끝내려면 하루 종일 꼼짝없이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다자이가 아침이고 낮이고 ‘마시자, 마시자.’ 하면서 나를 유혹했다. 꾹꾹 참다가 해가 지면 뛰쳐나가 허겁지겁 생맥주를 들이켜던 날들이 생각난다. -<인간 실격>, 옮긴이 후기에서
지난 세기,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 섬에서 뜨거운 생을 살다간 이바라기 노리코. 자기 나름의 사랑과 정의를 위해 아름다운 투쟁의 시간을 살다간 시인. 무엇이든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수용하여 자기 언어로 풀어내고자 하는 시원스런 용기, 어떤 편견 없이 죄의식 부끄러움 열등감 상실감 분노까지도, 기쁨 환희 추억까지도, 모든 감정의 광주리를 안고서 용감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경쾌하고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이 번역시집을 통해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세 친구는 제가 만난 북의 청소년과 청년을 바탕으로 창조한 인물입니다. 세 친구가 고향을 떠나 바다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까지 어떤 이별을 경험하고 어떤 비인권적 처우를 당하는지 쓰고 싶었습니다. 자유를 찾아 떠나는 위대한 여정에 대하여,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하여, 사지로 내몰리는 젊음의 안타까움에 대하여 쓰고 싶었습니다. 지구상 다른 모든 10대와 마찬가지로 가족과 친구를 사랑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그들은 나와 다르지 않았고, 어쩌면 그게 나였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을 쭉 갖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이 책을 쓰게 했습니다.
(…)
우리는 열린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넓고 푸른 바다처럼 모두를 너그럽게 받아 주는 터전에서 살고 싶습니다.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싸우기만 하는 건 지쳤어요. 우리는 지금보다 더 따뜻하고 평화로운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더 환하고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동북지방 지역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한 결핵소년의 연애담 <판도라의 상자>를 읽다 보면, 누군가 옆에서 가칠가칠한 솔로 피부를 문지르고 있을 것만 같은, 미세하고도 선명한 감각이 느껴진다. 다자이는 작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그러한 감각의 소통이, 사람의 정신을 일깨우고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라 믿었다.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이나 질투, 다툼이나 부끄러움, 혹은 그것들의 뒤섞임. <판도라의 상자> 속에는 사람들의 그런 솔직한 감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잔물결처럼 흔들린다. 사소한 개인의 감정은 억제하고 커다란 이념과 사상 아래 단결해야 하는 시대, 이에 동참하지 않거나 변두리에서 맴도는 이들은 불량아들이거나 쓸모없는 놈팡이 취급을 받던 시대, 그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막이 올랐음을, 다자이는 이 작품을 통해 보란 듯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상이나 이념보다는 한 송이 꽃의 미소가 더 소중한 이들도 있으며, 그것이 살아가는 의미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동북지방 지역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한 결핵소년의 연애담 <판도라의 상자>를 읽다 보면, 누군가 옆에서 가칠가칠한 솔로 피부를 문지르고 있을 것만 같은, 미세하고도 선명한 감각이 느껴진다. 다자이는 작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그러한 감각의 소통이, 사람의 정신을 일깨우고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라 믿었다.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이나 질투, 다툼이나 부끄러움, 혹은 그것들의 뒤섞임. <판도라의 상자> 속에는 사람들의 그런 솔직한 감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잔물결처럼 흔들린다. 사소한 개인의 감정은 억제하고 커다란 이념과 사상 아래 단결해야 하는 시대, 이에 동참하지 않거나 변두리에서 맴도는 이들은 불량아들이거나 쓸모없는 놈팡이 취급을 받던 시대, 그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막이 올랐음을, 다자이는 이 작품을 통해 보란 듯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상이나 이념보다는 한 송이 꽃의 미소가 더 소중한 이들도 있으며, 그것이 살아가는 의미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은 한 일본작가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꽃에 대한 기억을 기록한 산문이다.
고대와 중세 유럽, 서아시아와 중국을 지나
일본에 이르기까지,
고전문학과 예술 속에 면면히 이어온 꽃의 형상이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차라리 꽃과 식물을 향한 지적인 탄성이다.
저자는 시부사와 다쓰히코澁澤龍彦(1928~1987).
프랑스문학 번역가이자 서양 미술과 문화사에
해박한 저술가. 환상소설 소설가이자
『피와 장미』라는 이상한 잡지를 창간한 편집자.
지식콜렉터, 살아있는 도서관,
사드 저작을 번역해 사회 풍기문란을
조장했다는 죄로 재판을 받았으며,
오랜 벗 미시마 유키오에게 세기말 사상을
수혈하기 위해 번역과 저작에 힘썼다는,
자기 취향과 기호, 때로는 우정에 모든 걸
쏟아 부었던 인물.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저작과 신화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맹목적인 혼이 배어든 예술품과
건축물과 정원을 아끼며,
인류 업적 중에서도 조금 비뚤어진 데카당과
어둠의 세계사에 매력을 느끼는 한편,
와카와 하이쿠와 동요를 흥얼거리고,
환상적인 것들,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들을
수집하고 해석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을까.
수선화와 동백꽃을 시작으로 자기 생에서
꽃과 이어진 모든 기억과 지식을 풀어냈다.
책과 전설과 여행과 시와 노래......
기억의 실패에 감긴 실을 풀듯 쓴 산문이었다.
이를 2년여 연재하다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로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책에서는 용의 세계를 꿈꾸었지만 일상은
의외로 소박했던 한 인간의 역사와,
그가 사랑해마지 않던 인류의 문화사가
스물다섯 편의 플로라 산문에 녹아들었다.
글과 함께 실린 그림은 그보다 먼저 살다간
18~19세기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이들 동서양 꽃 그림은 한 애서가의 서재에서
편집자의 손에 이끌려 세상으로 나왔다.
다쓰히코의 담담한 글과 절제미로 가득한
옛 사람들의 그림이 조화롭다.
모두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들의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