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상업농과 기계농이 일반화되면서 종자를 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모종조차 모두 사다 심는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되면 이제 종자를 받을 줄 아는 농부가 사라지고 말 것 같아 두렵기만 했다. 종자를 받을 농부가 없다는 말은 종자입장에서는 더 이상 진화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과 같다. 채종할 줄 아는 농부가 모두 없어지기 전에 하루빨리 채종에 관한 책을 내야겠다는 조바심이 이 책을 내게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씨앗은 우주요, 토종은 생명이다!
- 작은 우주와 같은 생명의 보고이자, 삶을 풍요롭게 한 씨앗”
토종과 인연이 되어 토종을 수집하기 시작한 지가 벌써 30년이다.
토종 한 가지에 몰두하여 살아온 자신이 조금만 더 열심히 노력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앞서지만 남은 세월도 내 몸을 움직여 활동할 수 있는 날까지 아직도 수집이 미흡했던 곳에 남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우리의 귀중한 토종을 찾고 싶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토종을 찾아다녔던 발걸음의 일부를 떠올린 것이며, 또한 남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서게 될 또 다른 발걸음을 위해 내가 다시 돌아보고 되새기기 위한 비망록이다.
나의 볼품없었지만 짧지 않았던 발걸음의 기록들을 통해 토종에 대해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그것 또한 아주 소중한 씨앗을 심어 싹틔우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내가 심는 또 하나의 씨앗인 셈이다.
왜 우리 씨앗을 외국 회사에서 사야 할까?
오늘날 지구에는 1,000만 가지가 넘는 생물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서로 돕는 공생 관계로, 때로는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로 생태계가 유지되는 가운데 인류도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인간이 기계를 이용하여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하게 되고 농약이나 화학비료 등 여러 가지 공해 물질을 만들어 쓰기 시작하면서 지구에 살던 생명체 중 3분의 1 가량이 흔적도 없이,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연 생태계에서 생물의 다양성은 마치 비행기의 날개를 지탱해 주는 대갈못 같은 것입니다. 처음 몇 개가 빠져 나갔을 때는 별 문제 없는 것 같지만, 이윽고 날개에 붙은 판이 떨어져 나가고 날개 구실을 못해서 비행기가 땅으로 떨어지고 말지요. 생물의 다양성도 이와 꼭 같습니다. 결국은 생태계가 파괴되어 인간도 더는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우리 인류가 마땅히 지켜야 할 생물종 다양성에 대하여 훌륭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토종 씨앗에 들어있는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종자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단일 품종 위주의 재배가 계속되고 있으며,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불러올지도 모를 심각한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를 넘나들면서 주저함 없이 물음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정신 차리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이 모든 이야기들이 아주 재미있고 실감나게 읽혀서 저도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종자 주권, 생물종 다양성을 다룬 책으로서 여러분에게 기쁜 마음으로 추천하고자 합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한때 잃어버렸던 종자 주권을 하나 둘씩 되찾아오고 있습니다. 배추와 무, 수박이나 오이처럼 우리가 흔히 먹는 채소의 씨앗 값을 이제는 내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우리 땅에서 자라 온 삼복꿀수박, 불암배추, 관동무 씨앗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지요. 하지만 청양고추와 같이 우리가 그걸 먹을 때마다 외국 회사에 로열티를 내고 있는 채소는 생각보다 많답니다. 왜 우리 씨앗을 외국 회사에서 사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