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발견한 비평적인 결과는 우리 문학의 감정 구조가 서구 사상을 중심으로 이루고 있는 기독교나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에 기초를 두고 있기보다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의 그물이나 혹은 그것을 초월하면서 그 속에 머물고 있는 이른바 "멋"이라는 이름의 "낯설게 하기"와 같은 한국적인 지적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기서 논의한 작품들은 서구의 그것과는 달리 변증법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한 플롯보다 강심 밑으로 흐르는 물결이나 혹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도 같이 해체된 "놀이"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필자가 이 글들을 썼던 지난 10년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느 시대 못지않게 파고가 높았던 격동의 시대였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글들이 지난날의 한국 사회를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비록 이 글들이 지나간 역사적 순간에 일어난 특수한 경험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눈과 시각만은 시공을 넘어서는 이상적인 것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나 적용 가능한 보편적 진실을 담고 있다.
나는 가끔 삶의 본질적인 가치는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고통과 환희의 이중주인 랩소디를 제외하고 나면, 시간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억 속의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의식적인 인간이 삶의 여정에서 얻은 인식론적인 깨달음과 사색을 통해서 발견한 아름다운 진실을 기억으로부터 언어로 옮겨놓은 글은 닫혀진 존재의 벽 위에 끌질하듯 새겨놓은 수인의 지문과도 같이 인간이 시간을 이기고 남겨놓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다.
여기에 한 권으로 엮은 여러 편의 수필들은 부족한 것들이지만, 일생을 살아오면서 나의 작은 통찰력과 의식의 눈을 통해서 발견한 삶의 아름다운 진실을 언어로 표백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나의 삶의 자국인 동시에 사금과도 같은 의식의 잔무늬들이다.
나의 글들은 내가 일상적인 삶 속에서 느낀 욕망과 슬픔 그리고 지나가는 생각과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을 나타냄은 물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꿈 속의 이미지 그리고 추억의 대상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묘사한 것들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결코 우연한 감정에서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절대적인 갈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 여기에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여러 편의 수필들은 부족한 것들이지만, 그 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나의 작은 통찰력과 의식의 눈을 통해서 발견한 삶의 아름다움과 그 내면적인 진실들을 언어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나의 지나온 삶의 자국인 동시에 사금(砂金)과도 같은 표백된 진실의 빛무리이다.
그가 단순한 일상적인 경험을 질료로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신선한 작품을 창조하고, 단단한 시적 언어와 치밀한 소설 구성을 통해 주제의식을 반영하는 이미지와 메타포 그리고 우화(寓話) 등을 유기적으로 엮은 것은 연금술사의 그것에 비견할만하다.
오정희의 작품 가운데서도 '별사'는 가장 뛰어난 장인(匠人)의 솜씨를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만일 위에서 언급한오정희의 미학적 요소를 이 작품에서 제거해 버린다면, 낚시를 하기 위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안는 남편 때문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40대의 정옥이라는 여인이 아이를 등에 업고 친정집에 와서 늙은 어머니와 함께 그의 노쇠한 양친이 묻힐 '묘원'으로 소풍 가듯 찾았다가 빈 집으로 돌아가는 무미건조한 사건 만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작가 오정희는 존 키츠의 시처럼 농밀한 정적까지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언어, '묘원'으로 가는 먼지가 자욱한 길, 그 길 위로 지나가는 군인들의 행렬, 새로 만들어진 무덤 앞에서 재를 올리는 의식(儀式), 절간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 그리고 기억 속에서 떠올린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 등을 하나로 합쳐서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사건을 낯설게 만들어, 문학사에 남을 수 있는 보기 드문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우의적인 요소는 높은 수준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볍게 스치고 지나갈 부분이 아니다. 우리는 <장군의 수염>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참된 가치와 진실을 묻어버리는 편견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해야 할 책임이 있다. 직관적인 통찰력이 있는 평론가는 작가도 생각하지 못한 작품 속의 진실을 발견한다고 말하지만, 작가의 도움이 있으면, 더욱더 큰 비평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비평 내지 책읽기의 작업을 음악의 연주에 비유한다면, 연주자의 특수한 몫은 물론 있겠지만, 연주자가 작곡가의 의도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더욱더 아름답고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즘 소설 '가면고'는 자연 현상에 대한 모방 예술보다 인위적인 예술을 강조하고, 지나친 감상적(感傷的) 늪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복잡한 은유와 이미지 등과 같은 지적인 요소를 풍부하게 담고 있기 때문에, 엘리트를 위한 것으로 한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도 모더니즘 예술은 문학사 속에서 그것대로의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영상 문화가 활자 문화를 파괴하는 시대를 살며, 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최인훈의 천재성을 나타내주고 있는 한국 모더니즘 소설의 고전이자 백미(白眉)인 '가면고'를 난해하다는 이유만으로 엘리트 독자들의 전유물로만 한정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최인훈에게 이 작품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를 간청했다.
미록 이 책이 현대시 전체의 시적 내용과 경향을 완전히 조감하지는 못하지만, "평론가의 문학적 해석이 훌륭한 것이라면, 그것이 문학사가 될 수 있다"는 폴 드 만의 주장에 바탕을 두고, 한국시의 풍경은 물론 지난 1세기 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사라들이 직면해야 했던 인간성의 위기와 시대적인 흐름이 이들 작품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압축된 범위 내에서 밝히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