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어쩌면 등산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힘에 부쳐 숨을 몰아쉬면서도 산에 오르는 것은 아마도 평지에서는 볼 수 없는 탁 트인 전망을 접하게 되는 까닭이리라. 한눈에 세상이 다 들어와 눈이 크게 열리는 느낌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즐거움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엘륄은 또 다른 차원의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사실 이 초대는 저자 자신의 자녀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1987년에 두 권의 책을 출판한다. 한 권은 지금까지 저술한 모든 책들의 결론에 해당하는 『존재의 이유』였고, 다른 한 권이 바로 이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이었다. 특이한 것은 엘륄이 이 두 권의 책을 각각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헌정한 것이다. 자신의 자녀들에게 헌정한 이 책에서 일흔 여섯의 나이에 엘륄은 평생의 삶을 통해서 얻은 지성적인 통찰과 영적인 지혜를 전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다른 책에서 기술과 혁명의 결과들을 평가해 보았다. 나는 이 모든 경우에 다 맞는 결론을 하나 맺을 수 있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를 묵상한 『존재의 이유』가 모든 저작들의 결론에 해당한다면, 에필로그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한 모든 학문적인 연구와 저작활동들이 결국은 덧없이 사라지고 마는 헛된 것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고 역사라고 강변한다. 이 책에서 엘륄의 의도는 곧 그 삶과 역사의 중요성과 의미를 구체적으로 전하는 것이다.
사실 프랑스어 원제목인 Ce que je crois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내가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제목 탓에 사람들은 여기서 주로 어떤 신학적인 사상이나 이론을 기대하기도 한다. 특히 영미권의 독자층에서 제목을 보고 신학적인 책을 기대했다가 실망했다는 내용의 서평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문제는 믿음의 차원에서는 믿는 주체가 인간이라면, 계시의 차원에서 계시의 주체는 하나님이라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신학이 주로 계시의 차원을 다루는 것이라면,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믿는 개인의 삶과 사회와 역사와 그리고 거기에 신앙의 하나님이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조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현대의 언어로 쓴 엘륄의 전도서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이 될까.
이 책에서 저자 엘륄은 자신의 생애를 관통하는, 영혼을 사로잡은 두 번의 만남을 소개한다. 그는 한 만남의 경험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나는 그녀를 처음 발견하고 태양이 폭발이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나의 모든 갈망과 소망에 완전히 부합했다. [...] 그녀는 나의 우주가 되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통해서, 그녀의 눈 안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 흡사 연애소설의 한 장면과 같은 이 글은 엘륄이 자신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를 묘사한 것이다. 그는 남자와 여자의 진실한 사랑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이 땅 위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의 만남은 자신과 하나님의 만남이다. 하나님에 관한 성서의 “하나의 말씀이 돌연히 아주 실체적인 진리로 다가와 이제 그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 그때 나는 그 말씀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또 그 말씀을 거부할 수도 없다. 그 말씀은 어느새 내 삶의 중심에 들어와 있다.” 자신의 영적인 체험을 암시하고 있는 이 글에서 우리는 인간과 하나님의 만남이 인간과 인간의 사랑의 만남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인간의 사랑과, 말씀의 성육신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은 엘륄이 저술한 모든 책들의 원천이요 동력이다. “평생을 통하여 나는 인간이 더 깨어나서 자유롭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군중 속을 빠져나와서 스스로 선택하고, 또한 인간의 사악함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나의 책들은 다른 목적이 없다.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을, 그들의 과거 행위가 어찌되었든 간에, 나는 사랑하려고 애를 썼다.” 그 사랑으로 엘륄은 이 책을 통해서 우리 개개인의 삶과 인간의 역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고 통찰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역자로서 번역의 한계는 피할 수 없다. 한국자끄엘륄협회의 이상민 선생님은 엘륄에 대한 박학한 지식과 꼼꼼한 교정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울컥하는 감동 속에 책을 읽었다는 대장간의 배용하 대표님은 적절한 지적과 권고도 빼놓지 않았다. 영감이 뛰어난 아내는 이 책의 제목을 정해 주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또한 이 책을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눈앞이 환히 열리는 기쁨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문하게 되곤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질문의 무게는 더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매일같이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도덕적이거나신학적인 처방이 아닌, 구체적인 실존의 삶에 대한 방안은 절실한 필요성을 띤다. 기독교 신앙을 표명하는 순간, 지식인 사회에서 비주류로 낙인찍히다시피 하는 프랑스 지성계에서 자끄 엘륄은 기독교 지식인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답하는 것이 시간을 다투는 긴급성을 지닌 자신의소명임을 받아들인다. 1권에서 3권까지 시리즈로 출간된 그의 저서 『자유의 윤리』 삼부작은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전편에 해당하는 『자유의 윤리 1』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소외 문제를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하면서, 그 문제에 대한실존적인 방안으로 ‘자유의 윤리’를 제시한다. 여기서 자유는 철학이나 인간본성에연유한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자유와는 구별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로서 정의된다. 이어서 저자 엘륄은 이‘자유의 윤리’가 계시에 근거하기에 가지는 그 구체적인 범위와 대상을 기술하고, 이 자유를 수용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역설한다.
이 책 『자유의 윤리 2』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는 무엇보다 개인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모든 다른 윤리들과 달리,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의 윤리는 아무도 심지어 하나님조차 개개인을 대신해서 결정할 수 없고, 개개인이 책임을 지면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다. 저자 엘륄은 무용성, 일시성, 상대성의 세 가지 범주들을 기준으로 개인의 행위가 자유에 기인한 것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이 자유를 개인의 ‘이탈적 자유’로 규정한다. ‘이탈적 자유’는 프랑스어 단어 ‘la libert? d?gag?e’를옮긴 것이다. 이는 인간사회와 역사의 필연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자유를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으로경험하는 자유를 뜻한다.
이 개인적인 차원의 이탈적 자유는 당연히 사회적 차원의 ‘관여적 자유’로 연결된다. 이 ‘관여적자유’는 프랑스어로는 ‘la libert? impliqu?e’로서 ‘참여적 자유’와는 약간 구분되어 사용된다. 이에 대해 저자 엘륄은 ‘참여적’(engag?)이라는 말 대신에 ‘관여적’(impliqu?)이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를 후속작인 『자유의 투쟁』(부제: 자유의 윤리 3)의 ‘서문’에서 설명한다. 먼저 그는 인간이 주어진 상황으로서 이 세상과 이 사회에 속하게 된 것이지 인간 자신의 의지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지적인 뉘앙스가 강한 ‘참여’를 피하고 ‘관여’를 썼다고 한다. 또한 그는 사회적 상황과 관계는 주어진 것이지만 거기서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는 행위는 의지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진다고 덧붙인다. 그런 맥락에서 여기서 ‘관여적 자유’라는 말은 인간이 주어진 사회적 상황과관계 속에 수동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가운데 자신의 의지를 따라 능동적으로 선택적인참여를 하는 자유라는 의미를 띤다. 저자 엘륄은 『자유의 윤리 2』에서 ‘이탈적자유’를 주된 논지로 펼친다면, ‘자유의 윤리 3’에 해당하는 『자유의 투쟁』에서이 ‘관여적 자유’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저자 엘륄은 긴급성을 넘어 위급함을 느끼면서 『자유의 윤리』 삼부작을 완성했다. 그만큼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기술-선전-국가-행정-계획화-이데올로기-도시화-인격화’의 메커니즘들로 기술체계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화되어서,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고, 인간의 소외현상이 보편화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현대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소명은 종말론적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삶속에서 실천하는 것임을 밝혀준다.
이 책은 우리 마음속에서 스스로 던지게 되는 질문,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한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사회현실을또 다른 시각으로바라보게 한다. 역자로서 이 책을 통해서우리 각자가 현대사회 속에서 자신의 소명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