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를 믿고 연기법을 믿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불자라고 할지라도 금생을 내생의 해탈을 위해 복혜의 자량을 쌓고 준비하는 삶의 과정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삶은 단지 한 생의 행복과 성공을 위한 범속한 삶에 지나지 않아서 성불을 희구하며 살아가는 보살의 삶이 되지 못한다. 비록 하근의 하근에 불과할지라도 이와 같은 믿음을 통해서 해탈의 확신을 체험한 사람은 윤회 속에서도 생사의 고통이 클지라도 두려워만 하지 않고 용감한 전사처럼 인욕의 갑옷을 입고 보살의 길을 간다. 그럼으로써 성불할 그때까지 어디에서 어떤 생을 받든지 소중한 삶이 허무하게 끝나는 그러한 불행은 결코 있지 않을 뿐더러, 항상 불보살님을 뵙고 법을 듣고 위안을 얻는 무루의 기쁨이 있고, 해탈의 공덕이 점점 쌓여 가는 불멸의 행복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