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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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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인간 표범>

거미남

논리적인 추론은 여전히 빛나지만 그는 언제든지 변장과 총격전도 불사하는 보다 활동적인 탐정이 됩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지붕 추격전을 보여주던 <난쟁이>에서 예고되긴 했지만 증거를 조목조목 나열하며 범인과 두뇌게임을 벌이던 아케치 고고로는 이미 추억 속의 인물이 된 듯합니다. 학자적인 면모를 보였던 과거에 비해 훨씬 활동적인 탐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상대해야 하는 악당들이 점점 강해진다는 예고이기도 하겠지요. ≪거미남≫은 첫 신문 연재작이었던 <난쟁이>를 끝낸 후 자기혐오에 빠져 절필을 선언하고 방랑을 떠났던 란포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작품입니다.

난쟁이

에도가와 란포의 화자들처럼 말하자면 ?난쟁이?를 번역하는 과정은 매우 ‘묘한’ 체험이었다. 문장이 쌓여 하나의 단락이 되어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 (변사 없는 서구) 무성영화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난쟁이? 이전의 초기 단편들이 ‘이야기’의 화법이라면 ?난쟁이?는 이야기가 시각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어, 읽다보면 눈앞에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주인공들처럼 이색적인 쾌락을 찾아다니는 ‘엽기자’답게, 그리고 탐정소설만큼이나 환등기를 비롯하여 여러 광학적 기기들을 탐닉하던 ‘렌즈 박사’ 란포에게 영화라는 시각적 쾌락은 큰 매혹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판타지적 측면을 ?파노라마 기담?에 아낌없이 담았다면, ?난쟁이?에서는 모험활극의 서스펜스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난쟁이?가 매혹적인 것은 아사쿠사 때문이다. 초반부에 고바야시 몬조가 아사쿠사 공원을 지나는 장면을 읽노라면 일종의 ‘산책자의 풍경’이 연상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거기서 난쟁이가 발견되는 순간, ?천장 위의 산책자?의 사부로가 말했던 것처럼 범죄애호자들이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는 무대로 변하지만 말이다. ?아사쿠사 취미?라는 수필에서도 애정을 고백했듯이 에도가와 란포는 종종 작품 속에 아사쿠사를 등장시키는데, 그중에서도 국면에 따라 그 얼굴을 달리하는 ?난쟁이?의 아사쿠사는 참 절묘했다.

마술사

<마술사>는 다른 통속 장편들에 비해 미스터리의 요소가 보다 강화된 작품입니다. 중요한 복선들이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클라이맥스인 줄 알았던 마술사의 죽음 이후에도 반전을 거듭하는 등 <마술사>의 플롯은 더없이 흥미진진합니다. 게다가 <마술사>는 아케치 고고로의 연애담이기도 합니다. 고전 탐정소설에서 탐정은 사랑과 인연이 없는 존재일 뿐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의 미스터리를 푸는 것 이외에는 사생활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라는 걸 생각할 때, 탐정의 연애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마술사??는 이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엽기의 말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란포의 소설에는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부적절한 표현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작가 개인의 세계관과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므로 가감 없이 보여주는 편이 오히려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번역했습니다. 다만 일부러 순화하지도 않은 만큼 일부러 강조하지도 않았다는 점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 표범

“처음부터 범인을 밝히고 시작하는 까닭에 다른 소설들에 비해 트릭이나 추리 요소가 적은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는 인간 표범의 정체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비밀은 최후까지 밝혀지지 않고 그가 어떻게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는가는 여러 가설로만 남을 뿐입니다. 오우치 시게오나 등 여러 평론가들은 그런 모호한 결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결점이라고 지적하는데, 신보 히로히사는 이 소설이 연재된 시기에 군부의 비상체제가 강화되어 ‘에로그로’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기에 암시로 끝냈을 것이라고 변명해 주면서도, 그 이상 자세히 밝히면 너무 황당무계해지기에 자제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힙니다. ‘에로그로’란 에로틱과 그로테스크의 합성어로 쇼와 초기의 문화 풍조를 가리키며 1929년 대공황 이후 2·26 사건이 일어났던 1936년까지의 시기에 해당합니다. <마술사> 서두에서 매일같이 끔찍한 사건들이 신문 지상에 오르내린다는 서술처럼 이 시기에 실제로 엽기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으며 신문사들은 경쟁적으로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대중문화에서도 이런 경향을 띤 작품들이 큰 인기를 얻어 주류를 차지하게 되지만, 황도파 청년 장교들의 쿠테타인 2ㆍ26 사건으로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군부의 권력은 더욱 강력해지고 ‘에로그로’에 대한 탄압은 심해집니다. <음울한 짐승>으로 엽기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나 다름없는 에도가와 란포는 검열로 인해 이런 작품을 더 이상 쓰지 못하자 <괴인이십면상>을 비롯한 소년 탐정물로 전향했습니다. <흡혈귀>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던 고바야시 소년이 소년탐정단을 이끌고 아케치 탐정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소년탐정단 시리즈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황금가면

에도가와 란포는 [황금가면] 연재에 앞서 기존의 ‘소탐정 소설’에서 벗어나 좀 더 무대가 넓은 ‘대탐정 소설’로 진출한 첫 번째 작품이라고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지요. 그리고 한층 성장한 주인공 아케치 고고로와 함께 독자들이 깜짝 놀랄 만한 상대역이 등장한다고도 예고하며 이 인물을 과연 잘 다룰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 집필이 기대된다고도 했습니다. 아케치 고고로의 가장 유명한 상대일 황금가면은 바로 아르센 뤼팽입니다. 란포는 [거미남] 이후 통속 장편에는 구로이와 루이코와 뤼팽 시리즈를 적절히 배합하는 전략을 취한다고 여러 번 밝힌 바 있지만, [황금가면]에서 아예 뤼팽을 직접 등장시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뤼팽 시리즈의 번역본이 출간되어 인기를 누렸기에 뤼팽 팬들로서는 황금가면이 달갑지 않은 존재였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마르셀 슈보브의 단편 [황금가면을 쓴 왕]에서 착안한 황금가면이라는 장치는 정말 탁월한 발상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에 아이들 사이에서는 소설에 나온 황금가면 놀이가 유행했을 뿐 아니라 헤이본사에서 출간한 에도가와 란포 전집의 선전물로서 셀룰로이드 가면을 이용할 정도로 선풍적이었습니다. 란포는 [D자카 살인사건]을 비롯한 초기 단편부터 국내외 탐정소설과 범죄소설에 대한 인용과 패러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그러한 특성 역시 [황금가면]에서 정점에 이른 것 같습니다.

흡혈귀

자신의 소설에서 이미 사용했던 탐정소설의 트릭과 아이디어까지 총망라해가며 매일매일 지면을 서스펜스 넘치게 구성했던 <흡혈귀>는 연재 당시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지만, 작품 전체를 볼 때 과잉이고 개연성이나 정합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기치 않게 네 편을 동시에 연재한 데다가 사전에 플롯을 구상하지 않고 집필하였기에 란포 자신도 “지리멸렬하다”고 인정했지만, 평론가이자 추리문학 연구자인 나카시마 가와타로(中島河太郎)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호합니다. “란포는 자신의 통속 장편 대부분을 성에 차지 않아 하는 경향이 있는데, 독창성이 부족하긴 해도 탐정소설 특유의 미궁과 추리 해결을 골격으로 한 것이 많다. 때때로 그 중심 플롯에 선정적이고 섬뜩한 요소를 포함시킴으로써 효과를 강조하려고 했기 때문에 독자는 골격보다는 장식적인 부분에 눈을 빼앗겨 그 특질이 왜곡되는 것이 아쉽다. 란포가 너무도 압도적인 갈채를 받았기 때문에 탐정소설의 전형으로 여기지만 그 재미를 일반 독자에게 보급한 것은 대단한 공적이다.” 또한, <흡혈귀>에는 다른 작품들과 연관되는 인물들이 여러 명 나옵니다. <마술사>에서 예고했듯이 아케치의 연인이 된 후미요가 아케치의 조수로 활약을 하며, 훗날 소년탐정단을 이끌 고바야시 소년이 처음 등장하는 것도 이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들만큼 중요하지는 않지만, <거미남>부터 <황금가면>까지 아케치와 함께 범인을 추적했던 나미코시 경부 대신 쓰네가와 경부가 새로 등장해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음 작품인 <인간표범>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D자카 살인사건

에도가와 란포는 한국에서 그 명성에 비해 그다지 많이 읽히는 작가는 아니다.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과 폭넓은 작품세계에 비해 번역된 작품의 수가 많지 않고 제한적이기 때문인데,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한국 독자들은 에도가와 란포를 제대로 읽을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에도가와 란포는 일본 추리소설의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폭넓은 작품 활동을 했기에 극단적으로 말하면 어느 작품부터 읽어나가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에도가와 란포를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아케치 고고로 시리즈는 에도가와 란포를 읽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925년 「D자카 살인사건」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1955년 「그림자남」에 이르기까지 세월을 따라 아케치 고고로의 캐릭터 자체가 진화할 뿐 아니라 작풍 자체도 초기 단편시절의 본격추리물에서 벗어나 여러 요소들을 차용하며 다양하게 변형된다. 그렇기에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은 에도가와 란포를 가장 손쉽게 즐기면서도 가장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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