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씨 마을의 꿈>은 중국 최초로 에이즈(AIDS)를 소재로 했습니다. ‘딩좡’이라는 마을에서 비위생적인 헌혈 바늘 사용으로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사건이 실제 있었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인성의 어두운 면, 특히 자본주의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이 붕괴된 처참한 풍경을 묘사했습니다.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이었습니다. 제가 쓰고자 한 것은 사랑과 위대한 인성이었고,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이었습니다.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둘러싸고 있는 고난을 극복하고 선과 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영혼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한 욕망의 그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이었습니다.
『물처럼 단단하게』는 출판되자마자 ‘적색(혁명)과 황색(성性)의 금기를 모두 어겼다’라며 중국 최고 상부기관으로부터 ‘지명’당했습니다.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출판사에서 얼마나 베이징을 오갔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조정을 거친 뒤에야 풍파가 가라앉고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남긴 깊은 화근은 이후 『즐거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 『풍아송』, 『사서』로 이어졌습니다. 이 작품들이 논쟁거리가 되어 출판 불가 판정을 받은 것은 모두 시의적절하지 못했던 『물처럼 단단하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남들이 잊어주기 바라는 민족적 아픔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기억의 쐐기를 박으려 한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게 당연한 일이지요. 저는 『물처럼 단단하게』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아,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더 있군요. 『물처럼 단단하게』는 후기작들은 물론이고 제 작가적 운명과 깊은 관계가 있지만 특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연관이 깊습니다. 사람들은 이 두 작품을 자매편이라고 평하곤 합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2004년, 『물처럼 단단하게』는 2000년에 완성한 작품이지요.) 하지만 저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광야에서 자유롭게 자란 나무라면 『물처럼 단단하게』는 그와 같은 수종이지만 작가의 정원에서 가지치기를 통해 훨씬 크게 잘 자라난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제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나머지는 존경하는 한국 독자 여러분들께 돌립니다.
저는 늘 제가 처한 ‘환경’에 맞는 출판이 아니라 제 ‘현실’을 반영하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소망해왔습니다. 그리고 『사서』는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음으로써 모든 구애에서 벗어나려 했던 제 도전의 산물입니다.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아 자유롭다는 말은 잡다한 내용을 적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글을 쓸 때 정말로, 철저하게 어휘와 서술에서 자유로워져 새로운 서술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서술 질서’ 속에서 저는 필묵과 출판의 노예가 아닌 글쓰기의 황제가 됩니다. 저는 그렇게 ‘중국식 글쓰기’의 황제이자 반역자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글을 마치자 예상했던 대로 이전 저작과는 완전히 다른 찬사를 받는 동시에 이전 저작보다 더 강하고 빈번하게 거부를 당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결과는 『사서』 원고를 스무 곳도 넘는 중국 출판사의 동료들, 책임자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나왔습니다.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단호하게 거부했지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렸습니다. 글을 쓰기 전부터 또 다른 ‘서랍 문학’이 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에 오히려 홀가분해졌습니다. 아무런 원망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제가 편집자자라도 이 변절적 성향의 소설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중국 현실의 한 단면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중국식 현실일 것입니다. - 한국어판 저자 서문
저는 이 작품을 쓰는 데 4년이라는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4년이라는 시간은 제가 심각한 요추 부상과 경부 질환을 겪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의 전반부를 침대에 엎드려서 써야 했고 후반부는 특수 제작한 글쓰기용 선반에서 완성했습니다. 그것은 장애인들을 위한 가구 및 설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베이징의 한 공장에서 저의 몸 상태에 맞게 특별히 제작한 선반으로, 누워서도 글을 쓸 수 있고 자유로운 이동도 가능한 책상과 의자의 결합체였습니다. 매일 글쓰기용 선반에 엎드려 글을 쓰다 보면 팔이 거의 제 얼굴과 평행을 이룬 채 안정적으로 글쓰기용 판자와 함께 허공에 걸려 있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그 4년의 글쓰기를 지금은 감히 되돌아보지도 못합니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시간이지요. 하지만 다행히 『일광유년』은 중국에서 출판된 뒤로 제 일생의 글쓰기에서 비교적 쟁의가 적은 책,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책이 되었습니다.
『작렬지』에서 드러내려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촉발하는 핵이었다. 혼란스러운 오늘날의 중국에서 소설이 삶에서도 보이지 않고 대지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거친 뿌리를 포착했다면, 토지와 삶의 표면적 진실이 어떤가가 과연 그렇게 중요할까? 『작렬지』는 어둠 속에서 ‘가장 중국적’ 원인을 찾으려 했다. 화가가 강물 깊은 곳 보이지 않는 강바닥의 형태와 굴곡을 그리려고 하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 강의 수면이 잠잠하다거나 물살이 세다거나 하는 합리성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작렬지』에서 드러내려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촉발하는 핵이었다. 혼란스러운 오늘날의 중국에서 소설이 삶에서도 보이지 않고 대지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거친 뿌리를 포착했다면, 토지와 삶의 표면적 진실이 어떤가가 과연 그렇게 중요할까? 『작렬지』는 어둠 속에서 ‘가장 중국적’ 원인을 찾으려 했다. 화가가 강물 깊은 곳 보이지 않는 강바닥의 형태와 굴곡을 그리려고 하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 강의 수면이 잠잠하다거나 물살이 세다거나 하는 합리성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 후기에서 한 가지 일을 또다시 얘기하고자 한다. 그 일이 이 소설의 구상과 앞으로의 내 글쓰기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2004년 늦겨울과 초봄 사이, 팔순의 큰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서둘러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갔다. 출상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날 아침 출상 과정에서 백 명이 넘는 우리 효자들이 상복을 입고 허리에 삼끈을 맨 채 눈보라를 무릅쓰고 삼배구고의 예를 행하고 있을 때, 여동생 하나가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뒤쪽 사촌 동생의 영붕 안에 안치된 두 개의 관 위로 화려한 색깔의 나비들이 무수히 날아와 가득 내려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방금 사라져버린 희한한 광경 속에 멍하니 서서 생각해보았다. 혹한의 날씨에 눈송이마저 흩날리는데 이 나비들은 대체 어디에서 날아온 것일까? 또 어디로 날아간 걸까? 왜 내 동생의 영혼혼례를 치르고 있는 영붕 안에만 내려앉고 바로 옆 큰아버지 장례를 위해 마련된 순백의 영붕 안에는 내려앉지 않은 것일까? 중년이 되어 이미 뚜렷한 인생관과 세계관, 문학관이 형성되어 변하기 어려운 이 시기에, 어째서 내가 이처럼 ‘진실이 아닌 진실’,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장면을 만나게 된 것일까? 이 한 컷의 진실과 기이한 장면은 앞으로 나의 세계관과 문학관에 어떤 형태의 영향을 미치고 어떤 기능을 하게 될 것인가? 이것이 나의 글쓰기가 더이상 갈 곳이 없는 미궁에 빠져 있을 때, 하늘이 내게 처음으로 열어준 문학적 깨달음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