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제주도 출생
1964년 고산초등학교 졸업
1970년 제주 오현중·고등학교 졸업
1969년 9월 19일(오현고 3학년)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주동하여 대통령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 광주가정법원 송치
1971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사학과 입학
1972년 서울대학교 제주학우회 회장
1973년 재경오현학우회 회장
1973년 육군 학군단(ROTC) 입단(제13기)
1974년 4학년 재학 중,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학생운동(‘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 비상고등군법회의에서 10년형 언도
1975년 2월 15일 형집행정지로 순천형무소에서 석방
1976년 아세아문화사 편집부장(~1980년)
1979년 12월 사면·복권
1981년 2월 서울대 졸업
1985년 4월 東京大學 大學院 人文社會系硏究科 東洋史學專攻 석사과정
1987년 4월 동 박사과정(~1991년)
1988년 4월 도쿄에서 <‘4·3’ 진상규명 심포지엄> 주도
1989년 정윤형·현기영·김명식·고희범 등과 제주4·3연구소를 창립
1991년 배재대학교 교수 임용
1995년 제주4·3연구소 소장 취임(~2003년)
1997년 도쿄대학 문학부 조선사 연구과 객원연구원(~1998년 4월)
1998년 동아시아 평화·인권 한국위원회 사무국장 겸 운영위원장
1998년 8월 <제주 4·3 40주년 기념―동아시아 평화인권 국제학술대회> 개최
1999년 재단법인 5·18 기념재단 이사(~2004년)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2000년)
1999년 12월 ‘제주 4·3’ 특별법 쟁취
2000년 1월 11일 청와대에서 ‘4·3’ 특별법 서명식에 참석
2000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
2001년 국무총리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보고서 기획단> 간사(단장 박원순)
2001년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연대회의> 상임대표
2001년 <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 운영위원장
2001년 한일 양국의 합의에 의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2003년 배재대학교 교무처장
2003년 도쿄대학 문학박사 취득
2004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 당선으로 배재대학교 휴직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4선(제17, 18, 19, 20대)
국회를 그만두고 나서
2020년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2020년 국회 한일의원연맹 명예회장
2020년 국회 정각회 명예회장
2020년 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 이사장
2021년 1월 주일본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 발령
2023년 9월 일본 천황의 욱일장대수장(旭日章大綬章) 수상
현재(2023년 10월)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제주와미래연구원 상임고문
조계종 미래본부 <천년을 세우다> 정책자문역
한·일평화포럼 상임대표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구소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전통문화특별위원회 고문
더불어민주당 외교안보통일 자문위원
헌정회 이사
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 고문 및 이사
정각회 고문
한일의원연맹 고문
역사디자인연구소 상임고문
제18대 국회 때에 『정면승부』(2011년 11월)와 제19대 국회 때에 『여의도에서 이어도를 꿈 꾸다』(2013년 6월)라는 책을 출간했다. 『정면승부』는 어떻게 자라서 국회의원까지 하게 되었는가를 기록한 것이고, 『여의도에서 이어도를 꿈 꾸다』는 제17대와 제18대의 의정활동을 적어놓은 것이다.
그 후 20대를 끝내고 불출마하여, 대학에 돌아가 석좌교수를 하다가, 주일본 특명전권대사로 20여 개월 활동했다. 새롭게 첨가해야 할 부분이 있고, 고쳐야 할 곳도 많이 있음을 알았다. 앞의 책들을 토대로 하여 그 후의 일을 다시 정리하여 놓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증보판적 성격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나는 정치인 이전에 역사학자다. 전에는 대부분 관찬 사료를 중심으로 역사가 쓰여졌다.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에 의해 쓰인 것을 토대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민초들의 진정한 삶과 당시의 사회·정치 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구한말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은, 다른 차원에서 한말의 정치와 사회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물론 지방에서 풍문에 의해 접한 것을 가지고 쓴 것도 있기 때문에 사실과 부합되지 않거나, 자기중심적 서술이 갖는 한계가 있음에도, 한말이라는 시대를 이해한다는 점에서, 색다르고 귀중한 자료다.
나도 황현처럼 시대증언록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쓰기로 했다. 나를 보고 혹자들은 ‘파란만장한 풍운아’라고 한다. 혹자는 감옥을 갔다 왔으면서도 유학도 가고 교수도 하고 국회의원과 주일 대사를 지내었으니, 해볼 것은 다한 ‘출세한 인생’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 엄청난 고통과 시련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또한 나름의 트라우마도 있는 것 같다. ‘요시찰’이라고 하는 ‘빨간 딱지’로 30여 년을 감시 속에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격동기인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참모습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그리고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국가권력에 의해 굴절되고 적응해나가는가 하는 것을, 나의 경험을 통해 증언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시대 증언록’이라고 하고 싶다.
자서전 성격의 기록이다 보니, 자기중심적으로 서술하게 되고,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본질적인 한계이기 때문에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하고, 사료 비판을 통해 극복할 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3선 개헌’ 반대 운동을 하여 기소되었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반유신 투쟁의 민주화 운동인 ‘민청학련’(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10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 생활도 했다. 이 사건은 유신체제 때 국가공권력에 의한 최대의 용공 조작 사건으로, 이 땅에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지식인이나 학생의 반유신 운동을 영원히 없애서 영구집권하겠다는 독재자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무려 1,024명이 체포·구금되고, 180여 명이 비상군법회의에 기소·구속되었다. 그들은 나를 재경오현학우회 회장, 서울대학교 제주학우회 회장 그리고 불교 학생 대표로 집어넣고서, 일면식도 없는 제정구 같은 선배를 공범으로 묶어내는, 코미디 같은 짓도 서슴지 않았다.
1년 후에 대부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되었으나, 인혁당 관계자들 여덟 분은 사형에 처해져 ‘사법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김지하·이현배·이강철·장영달·유인태·정화영 등은 그 후에도 계속 장기간 영어 생활을 했다.
박정희 정권은 우리들을 형 집행 정지로 석방하고 나서도 사회안전법으로 꽁꽁 묶어놓았고, 박정희가 암살되고 나서 사면·복권되었으나, ‘요시찰’로 낙인찍어 김대중 대통령 초기까지 감시하였다.
‘긴장의 끈’이 너무 팽배하고 30여 년이라는 장시간 지속되어, 대부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였다. 권력은 개인의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한 짓을 당연한 것처럼 자행하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는 시련이었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한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그때의 동지들을 보면서 처절히 느낀다. 대부분 ‘낭인’처럼 살아가기도 하고, 소식조차 끊기는가 하면, 정신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김병곤·제정구·강구철·여익구·박석률·나병식·방인철·박형선·최민화·김수길·정재돈·하태수 등 40여 분이 5, 60대에 돌아가셨다. 요즘 같으면 요절이라고 하겠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박형규(작고)·안재웅·정상복·김경남(작고)·이광일·김형기·구창완·신대균·이원희·이상익 등의 목사들이 있다. 목사가 많은 것은 당시 기독교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서 KSCF를 비롯하여 기독교 계통의 관계 학생들이 많이 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수로는 서중석·유홍준·권진관·최권행·백영서·이종구·임상우 등이 있다. 정치 쪽에는 제정구·이철·유인태·장영달·이해찬·강창일·이학영 의원 등이 있다. 모두 합쳐도 3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도 일종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나도 아내가 일정을 물어보면, 짜증을 곧잘 낸다. 감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트라우마이다. 당시는 몰랐지만 엄청난 고통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가 하는 것도 삶의 한 과정이었다.
그중에는 생각을 바꾸어 달리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70년대에 박순식 선배(작고)가 이상한 글을 써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제1호라고 할 만하다. 그 후 김동길 교수(작고)·김지하 선배(작고) 등이 있다. 이것은 사상의 불철저성, 혹은 한계적 상황에서 도피로, 출세의 욕망으로, 정신적 질환 등으로 그 원인이 다양하다. 그러나 ‘4·19’세대나 ‘6·3’세대 혹은 ‘586’ 후배들하고는 괘를 매우 달리한다.
‘4·3’ 운동은 제주 출신으로서, 민주화 운동가로서, 역사학자로서 숙명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그래서 “온 청춘을 바치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름으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 후 정치인으로 변신했는데, 그것도 민주화 운동 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내리4선’이라는 새기록을 쓸 수 있었다.
2020년, 무난히 당선될 것이라는 국회의원을 박차고 나오려고 하니, 엄청난 정신적 방황과 고통이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가는 패턴이 다 바뀌어야 한다. 1년 정도 고민하다가, ‘세대교체’·‘정치교체’를 내걸어 과감히 결단을 내리었다. 모두가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훌륭한 후배들이 그 자리를 메꾸어주는 좋은 선례를 만들 수 있어서, 얼마나 잘한 일인가 하고 자위한다.
지나간 16년 간 국회의원의 시간이, “한여름의 ‘善夢’인가, 아니면 한겨울의 ‘惡夢’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아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 기간은 자기 시간이 없이 뛰어다니기만 했던 것 같다.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헌신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권력이라 생각하여 군림하고 곁눈질하면서 나쁜 짓하는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본분에 맞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의원은 부정·부패의 상징처럼 되어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꼴뚜기 몇이 어물전을 다 더럽히는 형국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너무 정치인 욕하지 마십시오. 너무나 힘든 자리입니다. 자기가 없이 살아가는, ‘헌신의 자리’입니다. 격려해 주세요. 그러나 군림하든지, 나쁜 짓 하면 가차 없이 채찍질해 주십시오”라고 한다.
국회가 왜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가. 실제 권력은 행정부가 장악하고 있는데, 그것을 견제·감시하는 것이 국회이기 때문에 관료가 의원의 말을 무시하지 못해서 생기는, 부수적인 것이다. 게다가 소수의 인원이고, 각 개인이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보좌팀이 십여 명이고, 국가 돈을 가지고 해외 시찰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등 특권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아우라이고 신기루’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디에 가서도 무시 안 당하고 대접받는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현역에 있을 때는 어디에라도 전화하면 받는데, 그만두었더니 안 받는다”라고 한탄하는 자들도 있기는 하다. 마음껏 권력을 향유할 수가 있어서 그런 것에 맛을 들인 자들은 언젠가는 들통나서 지탄을 받게 된다.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남기가 매우 어렵다. 유혹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치판에는 이름 파는 데 정열을 쏟는 ‘관종’들이 많다. 명예를 존중해야 하는데, 유명해지려고 발버둥 친다. 실제로 나쁜 짓을 하여 당시는 지탄받을지언정, 훗날에는 아무 문제 없이 거뜬히 당선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름만 남고 나머지는 잊어버리는, 인간의 기억 한계이고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정치의 본질은 잊어버리고 정치공학에 능한 자들이 여의도를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장 타락하기 쉬운 자리이기 때문에 늘 자기성찰, 성찰, 또 성찰해야 한다.
그동안 정치하면서 역사학자로서 느낀 감상을 가지고 정치인들을 유형화해 보았다. 이해를 위해 선비 ‘士’ 자를 붙여 나열한다. 현존하기 때문에 이름은 공개하지 않는다.
1) 장사(壯士)형 ? 호탕하다. 싸움꾼으로 불의를 보면 돌진하는 스타일이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다. 잘못에 대해 투사처럼 대응한다.
2) 몽사(夢士)형 - 꿈꾸는 스타일로서 분에 넘치는 꿈을 갖고 정치를 한다. 스스로 언젠가는 대권을 장악하려는 꿈을 갖고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과잉 자의식으로 오버하는 경우가 많다.
3) 책사(策士)형 - 스스로 전략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 때문에 늘 권력자 주변을 맴돌면서 접근한다.
4) 모사(謀士)형 - 정도가 아닌, 정치공학적 접근을 하면서 권력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성공해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5) 지사(志士)형 ? 행동도 생각도 지사처럼 한다. 정치의 본질을 늘 잊지 않고 실현해 나가려고 한다. 큰 정치인들은 이 지사적 면모를 갖고 있다. 단, 정치공학에 능하지 않고 독선적인 면이 있어서, 대중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6) 변사(辯士)형 - 연설을 잘하여 대중을 휘어잡는다. 만담가 스타일도 있어서 좌중을 갖고 논다. 요즘은 SNS를 통해 자주 소통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끌어나간다.
7) 면사(勉士)형 - 근면하고 착실히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모범생형 의원이다. 대중적 큰 인기는 없어도 지역 기반이 탄탄하여 장수한다.
8) 낭사(浪士)형 - 로맨티시스트형이다. 노는 것도 좋아하고 훈훈한 인간미가 넘쳐흘러 잔꾀부리는 정치꾼들하고는 달리, 주위에 많은 의원이 모여 즐긴다.
9) 박사(博士)형 - 공부를 많이 해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박학다식하여 이런저런 일에 많이 관계한다. 참모형이라든지 정책통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10) 첨사(諂士)형 - 아첨꾼형이다. 권력을 잡은 사람이 있으면 잽싸게 달려들어 아부하여 한자리한다. 그러나 동료들에게서는 손가락질 받기도 한다.
11) 한사(閑士)형 - 전형적인 한량이다. 노는 것 좋아하고 늘 여유가 있다. 게을러서 같이 일을 도모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사람은 좋아서, 주위에 많은 이들이 모여든다.
12) 망사(妄士)형 - 망령된 정치인이다. 정치의 본질에는 관심 없이 매명(賣名) 행위에 몰두하는 부류이다. 명예를 존중해야 하는데, 사술(邪術)에 걸렸는지 세 치 혀를 가지고 세상을 농락하는 ‘관종’ 스타일의 정치인이다. 요즘은 그런 정치인이 많이 보인다.
13) 잡사(雜士)형 - 잡스러운 정치인이다. 국회의원 자리를 권력으로 알고 주어진 특권을 마음껏 휘두른다. 돈이 있는 자들을 가까이하면서 후원금이나 정치자금을 거두어들이기도 한다. 결국은 문제가 되어 ‘불명예 제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 여러 유형이 있는데, 한 정치인이 두세 가지 유형을 공유한다. 예로, 김영삼은 지사형·낭사형·투사형이고, 김대중은 지사형·박사형·변사형이라고 할 수가 있다.
나는 과연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늘 고민해본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기 성찰하여 주기를 바란다(차후에 좀 더 구체화하여, 『정글 속의 동물』이라는 제명으로 출간하려고 한다).
家訓은 ‘和’이다. 평화롭고 화목하게 살라는 뜻이다. 대가족이기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신 어머님이 늘 몸으로 실천하면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글귀는 물처럼 살아가라는, 노자 도덕경의 ‘上善若水’이다. 물처럼 순리에 따라 살면서, 더불어 잘사는 ‘대동세상’ 세상을 꿈꾸었다. 내가 나고 자란 제주는 공동체 사회였다. 곧 더불어 사는 곳이었고, 노력한 만큼 거두어들이는 사회였다. 여기에서 체득한 지혜였을 것이다. 나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가르침을 철저히 믿는다. 동학농민전쟁을 연구하면서 배운 ‘人乃天’ 사상이기도 하다.
정치 신조는 ‘중도와 화쟁 사상’에 입각한 생산적 정치이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 극단을 가운데로 모아내어 제3의 생산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내 개인의 좌우명은 ‘安貧樂道, 安分知足, 自利利他’이다. 욕심은 헛된 것이니 재물에 탐내지 말고, 자기분수에 맞게 살고, 남을 도우라는 경구다.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한 것은 자기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잘될 때이다. 이때의 행복감이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베푸는 데 인색하지 마라, 오히려 더 베풀라”라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자리이타’의 삶을 추구하고자 해왔다.
나보고 복 중의 최고의 복인 ‘천귀(天貴)’를 타고났다고 한다. 귀인을 만나며 그들이 늘 도와준다는 복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반추해보니 사실 그렇다. 힘들었지만, 늘 웃으면서 신나게 살아왔다. 명예와 의리를 지키고, 정의를 존중하는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하다. 어릴 때 잘살아서인지, 돈에 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다. 본래 부끄러움 타는 성격이라, 권력욕은 있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으로서는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도 명예를 더럽히지 않고, 탈 없이 정치 생활을 마칠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스님은 “노년은 아름다운 인생길이며 삶의 여정 중에서 마음을 비우며 살아가기에 좋은 나이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빈 마음’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혹자들은 노욕을 부리면 망령되었다고 한다. 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남은 생이 길지 않기 때문에, 집착하고 보상심리도 작용하여 너그러움이 없어진다. 이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더욱 조심하고 성찰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격변기 한국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그리고 1970년대부터 2000년대 한국의 사회와 정치는 어떠한 것인가를 아는 데 참고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쓰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지만, 자서전적 성격의 서술이기 때문에 많은 자기중심적 기록이 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양해 구하는 바이다. 또한 사진 자료를 많이 수록하였다. 당시의 사진 그것도 충분히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