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에 소설가가 되었다. 데뷔작은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숫자 세기」(1999년).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문예창작을 공부하는 중이다. 놀이치료실과 구청과 출판사와 빵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겨울에 더운 나라 여행하기가 취미이고 훌륭한 소설가이자 인자한 고아원 원장으로 장수만세하는 것이 꿈이다. <작업> 동인, 그리고 애견인.
“나는 다만 쓸 뿐이다. 그것은 거룩한 일이기 때문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데뷔한 지 한 세기가 지나 있었다. 화들짝 놀라 어두운 지하창고로 더듬더듬 내려가 케케묵은 소설들을 꺼내왔다. 곰팡내가 진동하고 먼지가 더께로 쌓인 작품들을 앞에 두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오래된 배우자처럼 지긋지긋해서 꼴도 보기 싫었지만 그것들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지겹다고 유기하거나 방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면서 조심스레 먼지를 떨어내자 활자들은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참신하고 황홀하고 멋들어진 춤이었다. 나는 어쩌면 훌륭한 소설가인지도 몰랐다. 한 세기 전에 이런 걸작들을 써냈다니! 그것도 복잡하고 심란한 연애에 울고불고 매일 왕복 세 시간을 투자해 직장에 다니고 사흘이 멀다 하고 폭음에 주정을 하고 하루 두 갑씩 제일 독한 담배를 피워대면서 말이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이제야 첫 작품집을 내게 된 까닭은 내가 시대를 너무 앞서갔기 때문이다!
백 년 만에 첫 책을 내는 지금 나는 삭발을 한 그해 겨울처럼 자유롭다. 내 재능에 대한 회의도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받고 싶은 욕망도 명문을 써야 한다는 강박도 심지어 소설가라는 자의식도 버리고 나는 다만 쓸 뿐이다. 그것은 거룩한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