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출신 부모 밑에서 자란 홍금보는 7살 때 중국 희극 학원에 입학, 우점원 아래에서 무술을 배웠고 <애적교육>에 아역으로 출연했다. 그 사형제들과 '칠소복'이란 이름으로 음악과 무대에서 열연을 하였고, 12살 때 <공주와 칠소현>으로 영화에 데뷔하였다. 이소룡의 <용쟁호투>에도 출연하였다.
성룡과 원표와 더불어 현재 홍콩영화계를 주름잡고 있는 이른바 `칠소복` 출신이다.
1971년 <탈명금검>이란 작품으로 무술 감독을 시작했는데 그 작품으로 제1회 대만 금룡상 무술 감독상을 받는 영광을 얻었다. 그 외에도 <충렬도> <사망유희> 등에서 무술 감독으로 활동했다. 1977년 맥가, 유가영과 합작으로 가보영화사를 설립했고, 여기서 제작한 <삼덕화상과 춘미육>(1977)으로 처음으로 감독과 주연을 했다.
<제방소수>란 영화로 제2회 홍콩 금마장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을 시작으로 <7소복>으로 제33회 아-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제8회 홍콩 금마장 남우주연상을 받는 등 작품성과 오락성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홍가반'이라는 무술 감독팀의 리더로 많은 무술 감독들을 키워냈다.
쿵후와 괴담이 결합한 특이한 귀신이야기는 80년대 홍콩영화계의 인기상품이 되었다. 이어서 홍금보는 <패가자>(1981) <쾌찬차>(1984) <용적심>(1985), 베트남전을 무대로 아시아계의 희생자들을 다룬 <동방독응>(1986) <비룡맹장>(1988) <지분쌍웅> (1990) 등을 제작, 연출했다. 황비홍 시리즈에 관여하기도 했는데 서극이 초안을 잡은 <황비홍 서역웅사>는 홍금보의 손에서 완성되었다.
이후 그는 할리우드로 진출한다. <홍번구>로 입지를 다진 성룡을 도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자연을 무대로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인 야심작, 성룡의 첫번째 영어영화가 된 <나이스 가이>(1997) 연출을 맡으며 성룡의 생생한 액션이 살아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홍콩식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계보를 세워갔다. 성룡과는 <성룡의 썬더볼트>의 무술감독으로 이미 그 탄탄한 동반자 관계를 과시하며 시너지 효과를 예견한 바 있다.
다시 홍콩 영화계로 돌아와 제작과 감독을 했으나 흥행에는 실패,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그는 아직도 홍콩 뿐만이 아니라 전 아시아에서 그만의 개성을 인정받으며 사랑받는 배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