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형제의 덤이 되다
보름달이 정수리를 비껴나고 있다. 벌써 삼경이 지나가고 있다. 뜰의 잔디위에 앉은 삼 형제의 머리도 내린 이슬로 희끗하다.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가 달빛에 젖어든다. 삼 형제는 자주 만난다. 만났다 하면 밤이 새는 줄도 모른 채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하시던 어머님을 꼭 빼닮은 모습들이다.
어머님은 이야기를 좋아하셨다. 춘향전, 심청전, 옥루몽 등의 줄거리에다 어머님 특유의 유머와 익살을 보태어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시곤 하셨다. 어머님의 유전자가 자식들 세포 속속들이 스며들었는지 그들의 입심은 대단하다.
오늘도 큰 형님이 손수 끓이신 추어탕을 안주 삼아 삼 형제의 이야기는 끝을 모른 채 밤이 깊어가고 있다. 집집마다의 가정사가 이어진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어김없이 실천한다. 어릴 적 방앗간 집 뒷방 좁은 공간에서 무릎을 맞대며 나눴던 형제들의 우애의 불꽃은 지금까지 활활 타오른다.
가정사가 바닥을 보일 때쯤이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문학으로 옮아간다. 여든을 훌쩍 넘긴 큰아주버님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맏형답게 단연 돋보인다. 큰아주버님은 수필가시다. 단정하고 방정한 큰아주버님의 말씀 한 마디, 한 구절이 삶이고, 수필이 된다. 유머가 철철 넘치는 둘째 아주버님은 어떤가. 둘째 아주버님은 시조를 쓰신다. 그러니 흥얼흥얼 읊조리는 시구가 시조 한 가락으로 태어난다. 이순을 지난 나이건만 형제들 앞에서 톡톡 튀는 막내의 입에서는 삼빡한 시 한 수가 흘러나온다. 막내는 시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세 형제는 필연이기라도 하듯 모두 교단에서 국어 선생으로 지냈다. 그리고 갈래는 다르나 문학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우애를 누려왔으니 이는 한 나뭇가지에 나고 자란 이파리들의 닮음과도 같지 않을까.
수필과 시조와 시가 어우러진 한밤의 우애는 서늘한 달빛에도 식을 줄 모른다. 하지만 작가와 독자로 만나면 형과 아우의 관계는 사라진다. 열기는 냉기로 뒤덮인다. 우애는 사나운 발톱이 되어 서로의 글을 찢어 놓은 채 흠을 찾으려 눈에 심지를 높인다. 인정머리 없는 매정한 형제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글이 여물어가고, 형제들의 우애는 더 돈독해진다.
막내의 아내인 나는 결혼하면서 삼 형제가 수십 년 동안 파놓은 우애와 문학의 연못을 바라보며 살아 왔다. 어깨너머로 넘실대는 물결이 좋았다. 나도 그 물결에 휩쓸리고 싶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수필을 들고 그 연못에 서서히 발을 담그고 있었다. 삼 형제의 덤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삼 형제의 덤이 되어 수필을 쓴 지도 한참이 되었다. 삼 형제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썼다. 하지만 세상에 내놓으려니 부족하고 부끄러운 글뿐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내보낼까 한다.
2016년 가을 초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