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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헨리 폰다 (Henry Fonda)

본명:Henry Jaynes Fonda

국적:아메리카 > 북아메리카 > 미국

출생:1905년 (황소자리)

사망:1982년

최근작
2022년 5월 <화이어 크릭>

헨리 폰다(Henry Fonda)

헨리 폰다는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의 아마추어 극단에서 데뷔하고 브로드웨이에서 경험을 쌓은 후 큰 성공을 거둔 연극 「농부는 아내를 구했다(1935)」의 영화 버전을 통해 스크린에 등장했다. 그의 할리우드 경력은 두메산골 드라마 「트레일 오브 론섬 파인(1936)」과 프리츠 랑의 「하나뿐인 목숨(1937)」 그리고 베티 데이비스와 함께 주연한 시대극 「제저벨(1938)」로 출발부터 거창했다. 1939년에 그는 존 포드 감독과 함께한 첫 영화 「젊은 링컨 씨」를 만들었고 이어 「모호크족의 북소리(1939)」와 그를 아카데미 후보에 올려놓은 「분노의 포도(1940)」 등 두 편을 더 만들었다.

폰다의 가냘픈 체격과 부드러운 목소리, 도덕적으로 견고한 분위기는 그를 단연 잘나가는 배우로 만들었다. 프레스턴 스터지스의 「레이디 이브(1941)」에서는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는 비현실적으로 순진한 인물로 등장하면서 코미디 연기도 잘 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참전한 후에는 다시 포드 감독과 뭉쳐 「황야의 결투(1946)」에서의 와이어트 어프, 「도망자(1947)」에서 멕시코의 신부 역할 등을 연기했으며 「아파치 요새(1948)」에서는 엄격한 육군중령으로 드물게 호감 가지 않는 역할을 맡았다.

이 무렵 폰다는 한동안 할리우드를 떠나 브로드웨이로 돌아갔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함정을 배경으로 한 코미디 「미스터 로버츠」에 출연하면서 가장 인기를 얻은 역할을 연기했다. 1955년, 포드는 그 연극을 영화로 옮기면서 주인공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사실 영화 제작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감독으로 섭외된 존 포드가 여러 가지를 변경하고자 했고 그 프로젝트에 많은 것을 걸었던 폰다는 포드와 언쟁을 벌여 한 번은 주먹까지 오고간 것이다. 포드는 감독 자리를 내놓아야했고 두 사람은 이후 다시는 함께 일하지 않았다.

폰다는 히치콕의 「오인(1956)」과 시드니 루멧의 「12인의 노한 사람들(1957)」, 「핵전략 사령부(1964)」에서 계속 탁월한 연기를 선보였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1968)」에서는 평소의 이미지와 반대로 냉혹한 킬러를 연기했다. 여성 편력으로 악명 높은 폰다는 다섯 번 결혼했다. 폰다 집안은 영화배우로 상당히 성공한 피터와 제인을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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