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문학의 불안을 말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불안에 대한 문학이 아니라 문학의 존재 그 자체의 불안이다. 이러한 생각은 세간의 평처럼 독서 대중의 감소와 출판 시장의 불황 같은 외적 여건에서 기인하는 것도 아니며, 문학이 문화산업과 속도 경쟁의 시대에서 소외되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학은 이미 그러한 외적 여건에 적응하고 있고 그래서 자신의 내부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스스로 불안을 자초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적응한 나머지 문학이 있어야 할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상식이 무너지고 공공성이 실종되고 있는 폐허가 지금 우리의 문학이 서 있는 자리다. 당연하다고 전제해 왔던 가치들이 붕괴된 현상보다는 무엇이 그 가치를 무너뜨리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게 하고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때이고, 그런 의미에서 문학이 처한 불안은 한층 깊고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