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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중(成大中)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사집(士執)이며 호는 청성(靑城)이다. 서얼이었으나 통청운동에 힘입어 청직(淸職)에 임명된 후 서얼통청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박지원, 홍대용 등 북학파 학자들과 교유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정조의 문체반정이 적극 호응한 의고문주의자이기도 하며,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해응이 그의 아들이다. 1763년 서기의 자격으로 통신사 조엄을 수행하여 일본을 다녀와 <일본록>을 남겼다. 그 밖에 천 수 가까운 시를 수창하였으며, 특히 글씨로 유명하여 일본의 학자 및 일반인들에게 써준 글씨가 만여 장이 넘었다고 한다. 문집으로 <청성집(靑城集)>이 전한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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