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령 장군은 위인이다. 그의 부인 흥양이씨는 범부다. 위인인 김덕령 장군의 일대기는 널리 알려져 있으나 우리 대부분은 그 부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분명 이름이 있었을 것인데도 흥양이씨로 통했고, 아직도 통하고 있다. 필자는 위인이 아닌 범부의 일대기를 그려보고 싶었다. 생과 사가 직면한 적장을 밤낮 없이 남편이 누볐을 때, 가슴 졸였을 수많은 나날, 역모자로 몰린 남편이 억울한 희생을 당했을 때의 비통함, 왜군의 추적을 피해 끝내 절벽 아래로 투신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애잔한 삶을 미약한 필력으로나마 꾸며보고 싶었다. 범부인 흥양이씨의 삶에 작은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