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기본권 관련 문헌은 물론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기본권 관련 판례에서 독일 기본권론의 심대한 영향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독일 기본권론은 이 땅에서 근대법학이 시작된 이래 한국의 기본권 발전의 자극제였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러할 것이다. 이 때문에 독일의 기본권론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헌법학 연구자들에게는 기본적인 학습의 대상이다.
기본권론의 개별주제를 독일의 문헌과 판례를 참고하면서 깊이 있게 다룬 국내 논문도 넘친다. 그러나 독일 기본권론과 관련 판례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개관해 놓은 국내의 문헌은 드물다. 법률가 양성 시스템의 혁명적 변화로 독일어에 익숙하지 아니한 연구자와 실무가가 늘면서 독일 기본권론의 세례를 받은 우리 기본권론 및 관련 실무를 제대로 이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독일 기본권론을 종합적·체계적으로 개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역자가 독일 실정헌법의 특수성이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독일 기본권해석론 교과서인 이 책을 번역한 주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은 독일의 법학 입문자들에게 선호도가 매우 높은 기본권 교과서이다. 이 책의 초기 판본으로 기본권을 공부했던 학생들이 이제 중견학자가 되어 초대 저자들의 뒤를 이어 이 책의 집필 책임을 맡고 있을 정도로 긴 역사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성공 원인을 간단히 말하면 이 책이 교과서의 역할을 매우 충실하게 수행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즉, 독일 헌법인 기본법의 기본권에 대한 해석론의 핵심을 관련 주요 판례와 함께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면서도 해석론적 일관성까지 견지하는 한편, 기본권 관련 사건의 해결 능력까지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가운데 관련 판례 및 문헌의 누증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분량을 유지함으로써 독일 기본권해석론에 대한 개관을 용이하게 하기 때문이다. 역자가 이 책을 번역한 또 다른 이유도 상술한 여러 이유로 국내 기본권 교과서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또한 독일 기본법의 기본권 해석론 및 판례를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기본권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독자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각 단원의 말미에 있는 기본적인 참고문헌목록도 독일 기본권론을 연구하려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독일 기본권론 연구의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책이 국제인권법과 기본법의 기본권과의 상호관계를 기본권 총론에서만이 아니라 각론에서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국내법상의 기본권은 국제인권법과의 연관성을 놓치면 그 의미와 효력을 온전히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제인권법의 영향이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기본적 인권의 존중을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국제인권법의 준수가 대외무역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높아져 가고 있는 국제적 위상만큼이나 대한민국의 국제인권법 준수 정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커질 것이다. 이처럼 변화하는 국제환경에서 이 책의 기본권론 국제화 작업은 우리 학계와 실무계가 국제인권법을 다룰 때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 헌법재판소의 용역과제로 이 책 제15판을 번역했었기에 1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던 제33판의 번역작업은 제2대 필진에 의하여 대폭 수정된 기본권총론, 책 전반에 걸쳐 보강된 국제인권법 관련 내용에다 역자의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쳐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독일어 원문의 의미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종종 역량의 부족을 실감했다. 섬세하게 분화된 일부 독일어 용어들의 번역에 적잖은 시간을 쏟아야 했으나, 그 의미를 우리말로 충실하게 옮기는 데 모두 성공했다는 확신은 서지 않는다. 그러나 추가적인 검토를 위해 출판을 지체하면 개정판이 거듭 나오고 있는 이 책의 가치가 더욱 저하될 것이라는 핑계로 출판을 위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1999년 특수헌법재판연구·조사사업의 과제로 이 책 제15판을 선정하여 제33판 번역·출판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 다시 이 책의 출판에 흔쾌히 동의하여 주신 헌법재판소 사무처에 사의를 표한다.
이 책의 번역·출판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송석윤 교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하열 교수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끝으로 세심한 편집과 교정으로 이 책의 출판을 위해 정성을 기울여주신 박영사 관계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