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주도한 감독 겸 제작자. 장르영화의 대가로 특히 멜로드라마에 정통했던 감독이다. 본명은 신태서로, 1926년 함북 청진에서 태어나 동경미술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51년 '악야(惡夜)'로 감독 데뷔했으며, 이후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폭군 연산' '빨간 마후라' 등을 제작, 감독했다.
1950년 국내 최초의 기업형 영화제작사로 평가받는 '신상옥프러덕션'(후에 '신필름')을 설립하고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감독겸 제작자로서 위상을 확립해 갔고, 53년 당대 최고의 스타 여배우 최은희씨와 결혼한다. 이후 <로맨스 빠빠>(1960),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빨간마후라>(1964) 등 무수한 히트 작품이 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 때 신필름은 폐업되고, 78년 최은희의 납북에 이어 신상옥 감독도 납북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한동안 북한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부부는 86년에 탈출에 성공, 이후에는 미국에서 지내며 활동하다 2000년에야 한국에 귀국했다.
제작자로서 신상옥 또는 그가 겪었던 사건들이 화제가 되지만 신상옥의 영화들은 60-70년대 유현목, 김기영, 김수용 등의 영화와 함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신상옥은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지만 그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멜로'이다. 신상옥의 데뷔작 <악야>는 김광주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한 양공주가 전락하는 비극을 그렸다. 영화자체의 완성도는 조야하지만 세태고발적인 리얼리즘으로 평가받았다. 55년작 <꿈>은 이광수 원작의 영화로 신상옥의 문예취향이 드러나는 초기영화이다. 현실의 불행을 꿈이라는 초현실 세계에 전이해서 행복을 찾는 사상의 패턴은 신상옥이 빠져있던 경향 중의 하나였다. <지옥화>는 물질적인 빈곤이 사회문제나 윤리문제에 영향을 주게 되는 내용을 담았다. 전쟁과 빈곤 때문에 양공주가 된 여자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되면서 마치 연옥과도 같은 진흙땅에서 몸부림치고 뒹군다. 데뷔작인 <악야>와 함께 리얼리즘 계열의 수작이다.
<로맨스 빠빠>와 <로맨스 그레이>는 서민가정을 배경으로 한 홈 드라마로 이후에 많은 영화들에 영향을 주었고 서민배우 김승호의 존재가 크게 부각됐다. 이 영화들은 그 어느때보다 가정의 모랄이 건전했고, 모정과 애정, 이해와 융합이 흐뭇하게 그려졌던 영화들이다. 가족단위의 서민의식이 멜로드라마의 주제로 선택되어, 이전의 한국 홈드라마가 기구하고 슬픈 비극의 파란곡절이 그 소재요, 무대였다는 것과 비교해본다면 이들 영화의 혁신성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열녀문> <벙어리 삼룡> <이조여인 잔혹사>는 다분히 한국적인 전통, 특히 보수적인 윤리의식에 대한 비판을 보여준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개인의 욕망과 강고한 전통적 규범 사이의 충돌을 통해 근대화가 한창이던 60년대에도 엄존하는 유교적 윤리의 질곡을 비판적으로 응시한다. <열녀문>은 이러한 신상옥 영화의 계열 중에서 가장 비판의식이 날카로운 한국여성영화의 백미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수절이라는 구습이 여성에게 강요되면서 절개가 미덕으로 강조되는 분위기에 예리한 메스를 들이댄다. 낡은 모델에 대한 비판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이 부덕에 대한 그의 집착은 비범한 구석이 있다. <벙어리 삼룡>은 신상옥의 탐미적인 리얼리즘이 반영되어 있는 같은 계열의 영화로 볼 수 있다.
1978년 홍콩에서 납북되었으며, 북한 체재 중 '사랑 사랑 내 사랑' '불가사리' 등을 제작 감독했다. 198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탈출하여 이후 신필름, 컬럼비아 컬리지 헐리우드, 글로벌 벤처 헐리우드 대표, 칸 영화제 심사위원,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