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뚜껑조차 열지 못한 물감들이 많다.
이 색이 어울릴지 조금 확인만 하고 닫아 놓은 것들도 있다.
너무 오래되어 굳어 버린 것들도 여러 개나 된다.
온 힘을 다해 열어도 열리지 않는 물감들,
그러나 가만히 문을 두드리듯 똑똑 두드리면
기다렸다는 듯 쉽게 열리기도 한다.
그 시간이 시가 되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어떤 말들을 잊고야 말았다.
몸으로 깨워야 할 말들이 몸 안에 아직 그대로 가득하다.
누가 이 말들을 다시 풀어놓을 것인가.
오로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당신이 읽고 나서야 햇빛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말이다.
2022년 9월
서호가 보이는 창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