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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캐스린 딘 무어 (Kathleen Dean Moore)

최근작
2022년 7월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캐스린 딘 무어(Kathleen Dean Moore)

미국 오리곤 주의 두 강이 만나는 강가에 살면서, 매년 여름에는 바다가 육지 깊숙이 들어온 알라스카 남동부 외딴 곳의 작은 오두막에서 지낸다. 수필가, 사회운동가, 그리고 대학교수로서, 그녀는 자연사의 지식과 철학적 사유를 그녀만의 독창적이며 시적인 표현으로, 이 지구 위에서의 지속가능하며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글을 써오고 있다. 그녀가 쓴 많은 저서들 가운데, 물과 땅이 만나는 생명력 넘치는 곳에서의 삶을 그린 에세이집 , 바닷가에서의 삶을 다룬 , 그리고 폭풍우 몰아치는 섬에서 보살핌의 생태윤리를 탐구한 이들 셋이 대표적이다. 또한 그녀의 글이 많이 기고되는 잡지로는, 'Audubon', 'Discover', 'the New York Times Magazine', 그리고 그녀가 이사로 있는 잡지 'Orion' 등이 있다. 오리곤 주립대학교의 저명한 철학교수로서, 전공분야는 생태철학 내지는 생태윤리이다. 특히 야생의 자연 속에서 야외수업을 즐겨 하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에 이르는 캐스케이드 산맥의 원시림을 찾아, 자연에 관한 에세이 작문수업과 자연철학을 가르친다. 그녀는 'the Spring Creek Project for Ideas and Nature', 그리고 'the Written Word at Oregon State'의 설립자이자 디렉터이기도 하다. 생물학자인 남편 프랭크와 딸, 아들 가족과 함께, 야생의 땅을 찾는 일을 무엇보다 즐긴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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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야생의 위안> - 2013년 4월  더보기

이 책은, 우리가 자연에서 얻는 위안 그리고 희망에 관해서 말하려 한다. 나는 모래밭을 오가는 바닷물이나, 돌부리를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시냇물의 끝없는 흐름을 느끼며, 야생의 자연에서 고요한 평화 속으로 빠져든다. 죽음과 삶, 겨울과 봄, 마른 나뭇가지와 푸른 잎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리듬 가운데 의미는 분명 깃들어 있다. 당혹과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의 발아래엔 부드러운 솔잎과 따뜻한 진흙, 그리고 비에 젖어 붉은 색을 띤 돌처럼 우리를 받쳐주는, 든든한 바닥이 언제나 놓여있다. 나는 물이나 공기, 땅, 그리고 계절 등등 자연의 힘들을 이해하고 항상 기억하고자 애쓰는데, 그것은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돌려놓고, 무의미하고 공허해 보이는 우리들 삶에 의미를 되살려놓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기쁨을 이야기하다 슬픔으로 바뀌기도 하고, 기도와 고요를 통하여 얻은 마음의 평화와 희망 그리고 또다시 기쁨으로 향하는 용기를 말하게도 될 것이다. 원래 나는 행복에 관한 책을 낼 목적으로 이미 다른 글을 써오고 있었다.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지를 탐구하는 일종의 연구 프로젝트로서, 덩굴에 매달린 토마토의 싱싱한 냄새, 노인이 노래하는 것 같은 의외의 일들, 겨울이 지나가며 푸르게 변해가는 들판 등을 아주 상세하고 면밀하게 고찰하고 있었다. 그때,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이 나를 엄습했다. 그렇게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해 가을, 가까운 지인들의 죽음이 이어지면서 내 삶은 슬픔으로 빠져들었다. 한 친구가 물에 빠져 숨지는 사고를 당하였고, 또 다른 친구는 루 게릭 병으로 사망하였다. 시아버지는 쌓인 돌무덤에서 피어오르는 김처럼 서서히 꺼져가듯 생을 마감하였다. 또한 그 무렵, 친구인 돌프의 차가 해안도로 상에서 커브를 돌다가 연료를 가득 실은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그가 사망하는 사고까지 겹쳤다. 돌프는 나의 소중한 친구이자, ‘스프링 크맄 프로젝트(Spring Creek Project)’의 공동연구자였다. 그는 자신의 골든 뉴트리버 종인 개를 선샤인이라 부르며, 등에 맨 가방 속에는 언제나 시집을 넣고 다니는 멋진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의 개혁적인 성향이 보수적인 대학의 요구에 부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벌목으로 황폐해진 외딴 곳에 오두막을 지어서 혼자 살며, 그곳에다 삼나무, 소나무, 전나무 등 수 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가 되찾고자 한 것이 숲인지 아니면 그 자신인지 아마 스스로도 알 수 없었겠지만, 아무튼 원시림을 길러내는 일을 그가 계획하고 있었음은 분명하였다. 우리는 타고 남은 그의 재를 텐 마일 샛강에 뿌렸다. 사고를 낸 트럭 운전자는 무사하였으나, 돌프의 개 선샤인은 너무 심하게 다쳐서 할 수 없이 안락사를 시켜 주었다. 나는 절망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실재하는 그 무엇인지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인지, 그것이 무엇을 가득 채우는 것인지 아니면 텅 비워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슬픔이 세상에 무슨 역할을 하는지, 세상에 보탬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해를 끼치는지도 잘 모른다. 내가 지금 아는 것이라곤 슬픔이란, 서늘한 대기가 물 위에 내려앉듯 어둠 속으로 흘러드는, 지구의 위대한 순환의 일부라는 점이다. 슬픔을 느끼는 것은, 지구의 맥박을 그리고 삶에서 죽음으로, 존재에서 소멸로의 흐름을 타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을, 차갑고 그늘진 깊은 물로 씻어내는 힘을 지닌다. 그렇게 하여, 슬픔이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삶의 흐름에 더 단단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결국 위안의 근원으로 향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기쁨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자아의 어느 열린 틈으로 들어오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은 나를 경이로움으로 몰고 간다. 아름다움이나 신비에의 인식이라기보다는, 아름다움, 신비 그 자체가 갑자기 경계가 사라진 마음속으로 밀물처럼 밀려든다. 기쁨이란 밀려드는 큰 흐름에 들어 올려지는 그런 게 아닐까? 이 책을 끝낸 어느 깊은 밤, 나는 태평양의 바닷가로 향했다. 구름이 달을 가리고 있었고, 어두운 바다의 움직임은 오로지 소리로만 느낄 수 있었다. 난 모래밭의 가장자리에 서서 바닷물이 들고 남을 단지 상상할 뿐이었다. 바로 그때 달이 구름을 비켜나 미끄러져 나왔다. 들이치는 파도의 끝머리는 달빛을 모아 그 빛을 육지로 밀어올렸다. 빛이 그려낸 선은 너울거리며 바람 속에서 흔들리다, 다시 바다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빛의 가장자리는 부딪히는 파도를 타고 들어왔다가 어둠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모래밭을 오르내렸다. 내가 신은 고무장화까지 타고 올라오는, 달빛 머금은 파도에 발을 담그고 서서, 나는 행복에 잠겼다. 이것은 어둠에서 빛이 어떻게 나오는지, 위안이 슬픔에서 어떻게 솟아나는지에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구는 그 안에 무한한 가능성을, 어떤 것에서 다른 무엇으로 전환하는 신비를 안고 있다. 이것은 가장 야성적인 위안이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다. 오리건 주, 코바리스에서

-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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