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로서 자신의 책에 대해서 코멘트를 하는 것은 자칫 유치한 코메디로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의 부담을 갖는다는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본 책은 결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하나의'이야기는, 그것이 아무리 대단한 것일 지라도 결국은 하나의 편견과 사유의 경직됨, 그리고 폭력과 관련된다고 본다. 바로 이점에서 필자는 '책'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본 책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필자는 이 어지러운 세상속에서 앞으로 도래할 다르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면서, 그 세계의 총체적인 모습을 그려보려 애썼다. 그래서 본 도서는 새로운 세계의 여러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수 많은 종류의 '서문들'의 묶음과도 같은 것이다.
필자는 현제 세계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태들에 대해서 가차없고, 실랄한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일상적인 정치적 태도와는 달리, 필자가 어떤 파벌에 경도되어 있고, 그것을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현대'의 문제는 참된 '보편'에 대한 몰이해와 부정과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보편'이라는 것은, 그 본래적인 의미에서 볼때, 현대의 얼치기 정치적 지식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결코 '파시즘'의 꼬리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모든 종류의 '분파성'과 '편견', 그리고 '이해관계'를 넘어서있는 참된 전체, 객관성, 그리고 공정성과 연관되는 것이다. 이는 참된 지식인, 철학자, 그리고 깨달은 자들 사이에 공유되는 '보편'에 대한 이해이다.
물론, 필자는 그런 '보편'을 이제까지 우리에게 알려지고 교육된 방식으로 그려내고 추구하지 않는다. 필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편이 어떤 식으로 추구되어져야 하는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새롭게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필자는, 주의깊은 독자들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의도된 '침묵들'과 그것들의 '공간들'을 통해서 새로운 종류의, 그러나 참된 의미라고 생각되는 소통을 독자들과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철학적으로도 이제까지 알려진 작가주의나 독자주의라고 불려질 수 있는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의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의미한다. 거기에 더해서 이제까지 우리에게 '책'이라는 형태로써 강제된 '서사'구조로 부터의 해방을 시도함을 의미한다.
필자는 코멘트에서, 본 도서에 대해서 오로지 그 형식에 대해서만 일부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철저히 의도된 것이다. 글을 소개함에 있어서 그 내용을 말한다는 것은 이미 그 그들에 대한 철저한 폭력을 의미할 뿐이다. 또한 그런 식으로 소개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글의 빈곤함을 증명하는 것일 뿐이다.
형식과 내용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으며, 철저히 서로 화합한다. 그러나 이 관계는 서로 이질적인 것들의 우연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동일지평의 유사한 것들간의 일대일의 결합도 아니다. 오히려 '형식'은 그것을 통해 이미 가능한 모든 내용들을 선험적으로 제한하는, 내용들의 가능조건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형식은 '바탕내용'인 것이다. 사실, 이것이 '형식'의 본래적 의미인 것이다.
필자는 오로지 도래할 세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준비하고자 한다. 글을 쓰고 사유를 하는 자들이 단순히 이 시대의 노동자로 전락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바로 이 시대를 '넘어서서' 사유하고 글을 쓰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것만이 사유를 고갈시키지 않게 하며, 우리의 세계를 구원하는, 가장 오래전부터 알려진 길임을 말하고 싶다.
모든 종류의 미움과 분노, 그리고 이기심을 넘어서 당당하게, 어느 것에도 굴함없이,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사유한다는 것,,, 필자는 이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2003년 11월 17일 알라딘에 보내주신 작가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