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우리가 톱날 박힌 건초를 씹는다.
피의 원심력과 언어의 구심력으로 우리는 착지한다.
전우주멀리울기대회(2016)
팀 버케드의 『새의 감각』이 동기를 주었다.
크거나 작게 욺이 아니라 멀리 운다는 것. 대위법.
되겠습니다(2017)
공동체와 세계문학.
제발 ‘행복’이란 말 써보기, 반복, 따옴표, 언어의 총동원.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2018)
쇼스타코비치의(?) 『증언』을 읽으려다 내가 썼다.
대위법, 러시아식 유머, “내게 감사하십시오”라는 태도.
펠리컨(2019)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도상에서 상징으로
어둠과 어두움; 나를 더 거리 두어 팽개치기;;
(…)
이외 기억해두었다 써먹은 것: 열차포 구스타프, 비스마르크 추격전, 데데킨트의 절단, 환태평양 불의 고리, 『死人の?をきくがよい(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거라)』, 「바지를 입은 구름」의 “배춧국”
2020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