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클출판사 대표, 영어 번역가.
주요 번역서로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파시클, 2020), 『젠더와 민족』(그린비, 2012), 『플롯 찾아 읽기: 내러티브의 설계와 의도』(강, 2011), 『흑설공주 이야기: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동화 1, 2』(뜨인돌, 2002; 2005)가 있다.
무명의 존재nobody지만 자기 스스로와 창작 자체의 존재만큼은 오롯이 지켜냈던 단단한 창작자 에밀리 디킨슨. 광장에서 큰소리로 외치는 웅변이 아니어도 꼭 필요했던 틈새의 언어. 골방에서 다친 상처를 내보이며 깔깔댈 수 있는 속삭임. 고양이의 오후. 개의 산책. 뱀과의 조우. 산책길에 옷깃에 묻혀 온 우엉 가시. 그리고 너에게 갈 수 없는 거친 밤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진리를 에밀리 디킨슨이 들려주지는 않아도, 디킨슨에게는 괜찮은 얘기들이 참 많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볼 때는 제도와 체제에 순응한 숙녀였을지 몰라도 디킨슨의 발칙한 상상에 공감하고 동참한, 애틋했던 친구이고 가족이고 애인이었던 독자 수잔.
내가 에밀리여도 괜찮고 내가 수잔이어도 괜찮겠다. 그리고 누군가의 수잔이길, 누군가의 에밀리이길 소망해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까지 파시클의 자매이면서 친구이고 연인이고 독자가 되어준 많은 이들이 생각났다. 이번 작업은 이들에게 보내는 나의 감사와 응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