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영미어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으며 이론사회학 및 정보사회와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다. 이론사회학과 과학/지식사회학이라는 세부전공 중에서도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에서 생산하는 지식과 사회의 관계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번역서로 에이콘출판사에서 펴낸 『사회공학과 휴먼 해킹』(2012)이 있다.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 무인도에서 어떤 통신 수단도 이용하지 않고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은 채 홀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완벽히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에게 유용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들은 홀로 살 때보다 서로 무리지어 살 때 다양한 외부 위험에서 벗어나 더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살고 있다는 이 점 때문에 우리의 삶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즉 우리는 사회에 속해 있는 한, 자신의 프라이버시(privacy)를 일정 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렇게 보호되지 않은 프라이버시 때문에 우리의 삶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저자는 이 책에서 역설한다.
한국어판의 출간에 즈음해, 이 책의 아쉬운 점이기도 하면서 독자 여러분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항을 밝히는 것이 순서인 듯하다. 이는 바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프라이버시 보호 방법들 중 상당수는 대한민국의 법 체계하에서는 그대로 실행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저자 역시 자신이 제시한 방침들 중 일부는 해당 국가나 지역에 따라 불법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한다. 이는 이 책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본문에서 여러 차례 강조되듯 어떤 국가에서라도 반드시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그의 프라이버시 보호 방침들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결코 독자 여러분의 불법 행위를 부추기는 책이 아니다.
게다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침 중 상당수는 일반적 관점에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엄격한 실행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집에서 신문 배달을 받지 말 것은 물론, 이웃의 응급상황에서조차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집 전화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도 한다. 즉 비단 법률문제가 아니더라도,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침들을 모두 수용하고 따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방침들을 모두 수용할 필요도 없다. 저자 역시 그렇게 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이유는 당연하면서도 간단하다. 저자의 논의는 프라이버시 보호가 최우선 목표로 설정되어 있을 때만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 목표하에 저자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누구나 실천하는 편이 좋은 최소 수준의 프라이버시 보호부터 극단적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감추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프라이버시 보호 방법들을 아울러 설명한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저자의 지침을 따를지는 독자가 처한 상황이나 주관적 판단에 달려 있다.
이런 일부 한계들로 인해 이 책의 귀중한 가치가 사라지진 않는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프라이버시가 위험해질 수도 있고, 이로 인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과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단 한 가지 측면에서라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우리에게 어느 날 어떤 일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자가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언급하는 보호되지 않은 프라이버시로 인한 잠재적 위험과 이를 예방하는 방법을 사전에 알고 있다면, 평상시에도 조금 더 경각심을 갖고 행동할 수 있을 것이고 어느 날 갑자기 닥칠지도 모르는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도 있는 극단적 상황에 대처하는 차원에서라도 이 책에서 제시하는 자신을 숨기는 방법을 알아둘 가치는 충분하다. 마치 만일을 대비해 심폐소생술을 익혀놓듯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무인도에 고립되어 살지 않는 모두가 한 번쯤 읽어둘 만한 훌륭하고 유익한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프라이버시 보호 방법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수 있는 실효성을 갖추고 있을까? 사실 이 방법들의 실효성은 이미 검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책의 근간을 이루는 방법들은 저자가 1960년대 프랑코 군부독재 체제하의 스페인에서 무사히 비밀 활동을 하기 위해 고안한 것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의 많은 동료들이 체포되어 수감되거나 강제 추방되었지만, 그는 이 방법들 덕분에 무사히 살아남았다. 즉 그의 프라이버시 보호 방법은 국민들에 대한 통제가 극에 달했던 독재 정부하에서도 유효한 방법으로 이미 검증된 셈이다. 물론 저자가 스페인에서 비밀활동을 하던 당시에는 인터넷은커녕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다양한 통신수단 중 상당수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컴퓨터, 인터넷, 얼굴 인식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에 따라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저자가 1999년부터 해온 국제 프라이버시 자문 사업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프라이버시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런 새로운 방법들의 실효성 역시 이미 검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저자의 방침들은 다양한 조건하에서 그 효용성을 검증받았으며, 이 점이 이 책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최근 소식을 전하며 글을 마치겠다. 평생 이메일이나 전화 자문은 모두 거부하고 대면 자문만을 고집해온 저자는 최근 건강 문제로 인해 대면 자문을 줄이는 대신 간단한 이메일 자문도 시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에 관심이 있거나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은 독자들은 그의 웹사이트인 www.jjluna.com과 그의 블로그인 http://blog.invisible-privacy.com를 방문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