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성은 시인이며, 오지 전문 잡지 기자 출신으로 1991년 첫 네팔 트레킹을 다녀온 이후 매년 네팔 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순정을 발견한” 그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네팔 카트만두에 거주하면서 식당을 운영하고 히말라야 산군을 여행했으며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를 출간했다. 2019년 현재 미디어피아 전문 작가로 활동하면서 ‘피케 기행’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시가 시답지 않게 여겨질수록
스무 해도 넘은 오래전 일이다. 면사무소에 가서 호적등본을 신청해놓고 기다리는데 목발을 짚은 외다리 사내가 들어서더니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시를 읊었다. 사무실 전체에 울려퍼지는 우렁찬 음성이었다. 제목은 ‘나무’, 그리고 자작시라고 했다. 산에 푸른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무꾼이 올라와 톱으로 잘랐다는 내용이었다.
짤막한 동시 형태의 단순한 시였지만 워낙 진지한 낭송이었기에 충분한 감동이 있었다. 면사무소 사회계원이 그에게 얼마간의 돈을 건넸고, 나는 그를 근처 대폿집에 데려가서 막걸리를 받아주었다. 그는 마시기 전에 반드시 성호를 그었으며 양은 사발을 성배처럼 받들고 거룩하게 마셨다.
그는 단 한 편의 자작시를 낭송하며 전국을 떠도는 방랑자였다. 나는 그 사내보다 한술 더 떠서, 내 시집을 배낭 가득 짊어지고 팔도강산을 떠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를 써 시집을 낸들 그게 다 소용이 닿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외다리 사내처럼 단 한 편만 갖고도 밥을 굶지는 않을 것이었다.
문제는 얼마나 진지한가이다. 그것이 비록 일종의 앵벌이를 위한 연기일지라도 얼마나 진지하게 연기하느냐가 중요하다. 시가 시답지 않게 여겨질수록 더욱 진지하게 붙들고 있어야겠다.
2006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