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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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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유대인의 탈무와 새마을 정신>

이정환

· 호 비산(飛山)
· 1942년 경북 선산군 출생
· 경북 구미중학교 졸업
· 경북고등학교 졸업
·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 박정희 대통령 청와대 새마을 담당 비서관, 민정비서관
· 재단법인 5·16 장학회 이사
· 방위산업체 대표이사
· 한국 기능올림픽 조직위원회 이사
· 대한체육회 이사
· 강원도 고성 전 세계 잼버리 대회 기획본부장
· 한국정신문화포럼 대표
· 범국민 새마을 정신운동 연합 총재
· (사)충·효·예 세계 평화실천운동본부 총재. 이사장
· 5·16 민족상 수상
· (사)세계평화실천운동본부 총재
· 세계새마을운동본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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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유대인의 탈무와 새마을 정신> - 2021년 1월  더보기

세계인의 교과서 새마을 정신 1 필자가 경북고등학교 3학년 때 가정교사로 있던 집으로 친구가 놀러 왔다. 친구는 대구상업고등학교 2학년 박재홍이다. 우리는 장래의 꿈에 대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다. 친구가 대구상고를 졸업하면 은행에 취직한다기에 내 딴에는 애정 어린 조언을 했다. “대학을 가야지! 대학 진학하지 않고 은행에 바로 취직해서는 금융계에서는 출세하기 어려워. 그러니 서울 상대를 목표로 해서 열심히 공부해라. 서울 상대를 입학하면 네 삼촌이 등록금은 해주지 않겠냐. 그리고 일단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며 그다음에는 나처럼 가정교사를 하라구.” 사실, 박정희 장군이 그의 삼촌이다. 사실 재홍이가 평소에 삼촌 자랑하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들었다. 내가 무슨 말끝에 다음 주에 부산에 갈 일이 있다고 하자 친구가 뜻밖의 말을 하였다. “정환아, 내 심부름 좀 해 다오. 우리 삼촌에게 내 편지를 전해 다오. 삼촌이 이번 군 인사에서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발령받아 내려 가신지 얼추 3개월쯤 된다.” “무슨 편진데?” “내 장래에 관한 의논을 드리는 편지야.” “그런 중요한 편지라면 네가 직접 드려야 하지 않나?” “아냐. 그렇지만 마침 네가 부산 가는 길이라니 삼촌에게 내 편지를 좀 전해주면 좋겠다.” 2 필자는 1942년 경북 선산군 구미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구미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와 경북고등학교 중에 어느 학교로 진학하느냐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 선택이 내 운명을 좌우할 것을 나는 몰랐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은 대구사법학교를 원했고, 나는 경북고등학교를 원했다. 부모님은 “사범학교 졸업하면 곧바로 초등학교 선생이 되고, 매달 월급을 받는 것”이 좋다며 취업 쪽을 강조했다. 나는 초등학교 선생질보다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고 내 꿈을 펼쳐보기 위해 진학 쪽을 고집했다. 부모님이 나를 사범학교에 보내기를 원한 것은 대학 입학금과 4년 동안 등록금 부담을 크게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막내 삼촌, 형, 사촌이 다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였다. 어느 쪽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 같아서 고심 끝에 내가 승부수를 던졌다. “경북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대학 가서 부모님 신세 안 지고 4년 동안 제힘으로 공부하겠습니다.” 3 1960년 2월 2일, 친구의 편지를 가지고 물어물어 부산 거제리에 있는 군수기지사령부에 갔다. 드디어 나는 군수기지 사령관실에서 박정희 소장과 마주 앉았다. 군복과 모자에 붙은 별 두 개가 엄청 위엄 있게 보였다. 내가 말했다. “저는 경북고등학교 3학년 이정환입니다. 제 친구 박재홍의 심부름을 왔습니다. 삼촌께 전해 드리라는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소장은 너무 뜻밖의 말을 하였다. “방금 경북고등학교라고 했지? 경북고등학교는 구미 같은 깡촌에서 아무나 갈 수 있는 학교가 아닌데, 자네가 어찌 경북고등학교를 갔지? 중학교는 어디를 나왔는가?” “구미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와! 구미에 인물났구나. 대단하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정환입니다.” “이군, 우리 악수 한번 하자.” 떨리는 내 손을 박정희 소장이 세게 잡고 말했다. “자네는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구미는 물론 우리나라를 위한 큰 인물이 되기 바란다.” 박정희 소장은 내가 건네준 조카의 편지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면서 소리쳤다. “이놈의 자식! 내가 대한민국의 청렴결백한 군인인 줄 모르고 내게 이런 취직 부탁을 해? 군인이 무슨 수로 취직을 시켜준단 말인가. 이런 정신 나간 놈이 다 있나. 고약한 놈!” 그 순간 나는 겁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삼촌! 제 동무 재홍이는 공부도 잘하고 아주 모범적인 학생입니다. 어떤 직장에 가더라도 책임을 완수하며 맡은 일을 잘할 것입니다. 삼촌이라면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이신데 조카가 다소 무리한 부탁을 했다 해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삼촌께서 좀 힘드시더라도 이번에 재홍이를 꼭 도와주시면 꼭 훌륭한 인물이 될 친구입니다. 꼭 도와주셔야 합니다. 재홍이는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며 반드시 삼촌께 그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박정희 장군은 내 말에 한풀 꺾이고 말았다. “그놈 만나거든 내 말을 전해라. 젊은 놈이 처음부터 취직자리를 남에게 부탁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을 해보고 안되면 그다음에 부탁해야지. 젊은 놈이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하는 거라고 전해.” 나는 박정희 소장의 강인한 눈빛과 짧게 말하는 말 한마디마다 단호함과 결연함이 묻어나는 것을 보고 이분이 예사로운 분이 아니란 것을 대충 알았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분이 내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내 조국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부국강병의 아버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더욱 내가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특히 그가 일으킨 새마을 운동과 새마을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잠자는 백성을 일깨우는 일과 그에 따르는 온갖 잡다한 일을 하는데 내 전 생애를 바칠 줄을 꿈에도 몰랐다. 4 1961년 5월 15일, 재홍이와 필자는 군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하였다. 결국 재홍이는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군에 입대한다는 인사를 하려고 서울 삼촌 집으로 간다고 했다. 이상하게 재홍이는 나를 기어이 대동하게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서울행은 재홍이가 마지막으로 삼촌에게 대학 입학을 도와 달라는 부탁하기 위함이던 것이었다. 서울 중구 신당동 62-43번지 박정희 소장 댁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야간 군용 열차를 탔다. 5월 16일 아침이 밝았다. 신당동행 버스 안 라디오에서 긴급 뉴스가 나왔다. 박정희 소장과 장도영 장군 등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면서 혁명공약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박정희 소장의 집에 도착했다. 숙모인 육영수 여사를 만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엄청나게 걱정하시는 것이 내 눈에도 충분히 읽을 수가 있었다. 내 딴에는 위로를 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숙모님!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 좁은 생각에는 숙모님께서 걱정하실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자 숙모님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학생이 아무리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가요?” 내가 말했다. “숙모님, 미안합니다. 삼촌께서 하시는 일이 만약 잘못되었다면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예, 숙모님! 저는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아요. 삼촌께서 시작한 일이 성공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숙모님이 여사가 말했다. “학생은 참으로 똑똑하고 멋진 젊은이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5 대학을 졸업하고 박정희 대통령 민정수석인 권상하 수석과 함께 민정비서관으로 발령받았다. 주로 직계 가족들은 물론 혁명 주체 세력들의 의견 수렴과 소통을 위한 민정 업무의 축을 맡아서 일하였다. 특히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교육사업으로 정수 장학회, 국제기능올림픽, 기술교육의 최첨단 정수직업훈련원, 방위산업 육성과 중화학공업 발전에 뒷받침이 되는 일과 민족의 정신 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조국 근대화 작업과 민족중흥의 대 과업을 이룩하는 데 모든 노력을 했다. 그 후 대한체육회를 통해서 체력이 국력임을 강조하고 청소년교육을 위해서 청소년교육 월간지 ‘사회교육’을 통해 청소년교육을 지원하였고, 세계 국제 잼버리 대회를 강원도 고성에서 168개국의 청소년 체전을 만들기도 했으며 그 후 사단법인 충·효·예 실천운동본부를 직접 경영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사단법인 세계평화실천운동본부를 운영하면서 우리 민족의 기상과 역사와 우수성과 발전상을 젊은이들에게 알리려고 평소에 해 오던 자료 수집과 글쓰기를 해 왔다. 6 유대인의 ??탈무드??는 유대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온 책이다. 서기 70년 성전이 무너지고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떠나 로마제국의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자 유대인들은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탈무드를 구상하게 되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가르침들을 하나의 책으로 완성한 것이 미슈나인데, 이는 토라(율법)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과 토라의 실생활 적용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책이다. 탈무드는 유대인의 신앙과 민족정신의 원천이며 이들의 탁월한 교육과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해준 바탕이 되어 왔다. 그래서 ??탈무드??는 유대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온 책이다. 경전이자 잠언집이요, 하나의 문학이기도 하다. 삶의 지혜는 물론이고 처세술 관련 교훈이나 일화들이 있는가 하면 어린이들도 재미있어할 우화나 동화 같은 이야기도 많다. 이러한 ??탈무드??의 내용은 기원전 500년부터 서기 500년에 걸쳐 약 1000년 동안 구전되어 오던 것을 2000여 명의 학자가 10년 동안 편찬한 것이다. 따라서 ??탈무드??에는 유대인들의 정신적 · 문화적 자산이 들어있다. 그 분량도 방대해 총 20권에 1만2000페이지인데 250만 개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졌고, 무게가 75킬로그램이나 된다. ??탈무드??의 성립은 유대인 곧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깊게 연계되어 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한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토라(율법)를 받고, 그 가르침을 여호수아에게 전했고, 여호수아는 예언자들에게, 예언자들은 최고 회의의 학자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그 가르침을 전했으며, 에스라 Ezra와 같은 학자들이 그것을 일반 백성에게 가르침으로써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7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였지만 큰 나라였다. 나라의 국토는 작지만,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국민의 수는 많지 않지만, 큰일을 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유대인의 인구는 약 1100만 명 그중 미국 684만 명 이스라엘 약 500만 명 나머지는 전 세계에 분산되어 살고 있다. 다 합쳐도 세계 인구의 0.2 %에 불과하다. 그런데 세계 역사의 가장 창조적인 일을 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의 영토는 20,770만 평방킬로미터로 경기도 정도의 규모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다. 미국의 변호사 70만 명 중에 20% 14만 명이 유대인이다. 국민투표로 당선된 미국 상원의원 100명 중 11명, 하원의원 435명 중 25명이 유대인이다. 그런데 총장, 주요행정 책임자 90%가 유대인이다. 가장 영향력이 있는 매스컴 중에 뉴욕타임스 사장, 슐츠버그 워싱턴 포스트 사장, 케서린 그레이엄, 가장 출판을 많이 하는 렌덤하우스 사장이 유대인이다. 모세, 솔로몬, 예수, 바울,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막스, 심리학자 프로이트, 화가 샤갈,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세계적 지휘자 번스타인, 외교관 키신저, 쉰들러 리스트와 쥬라기공원 등 영화감독 스필버그 등도 유대인이다. 유대인은 작으면서도 어떻게 우수한 민족이 된 것일까? 한 마디로 성경에 그 답이 나온다. 그들은 말씀과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3000년을 이어온 민족이다. 탈무드와 랍비에 의한 철저한 가르침으로 전인적 교육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세계 금융의 4%도 유대인의 손에서 움직인다. 근래에 석유가 발견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매장량과 거의 같다고 한다. 셰일가스를 퍼내고 있는 미국은 600년 쓸 매장량으로 단연 세계 최고로 향후 100년은 세계 패권을 유지할 것이다. 탈무드처럼 새마을 운동은 신생 국가들에게는 부국강병을 이루는 기초 교과서가 될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경제 대국이 될 노하우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잘 활용하면 좋겠다, 8 새마을 운동은 1970년대의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중요한 사건이다. 1970년 4월 22일 한해 대책을 숙의하기 위하여 소집된 지방 장관회의에서 대통령 박정희는 수재민 복구대책과 아울러 넓은 의미의 농촌재건 운동에 착수하기 위하여 근면·자조·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마을 가꾸기 사업을 제창하고 이것을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라 부르기 시작한 데서 시작되었다. 1971년 전국 3만 3,267개 행정리동行政里洞에 시멘트 335포대씩 균일하게 무상지원하여 각 마을마다 하고 싶은 사업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였다. 이 결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는데, 첫째는 정부가 무상공급한 시멘트로 마을 주민들이 자체 노력과 자체 자금을 투입하여 마을이 필요로 하는 숙원사업을 해낸 경우이고, 둘째는 시멘트의 무상공급을 받았지만 뚜렷한 사업을 하지 못한 경우이다. 정부는 반응이 있는 1만 6600개 마을에 대하여 또다시 시멘트 500포대와 철근 1t씩을 무상공급하면서 자발적인 협동 노력을 장려하였다. 이와 같은 경쟁적·선별적 방식으로 점화된 새마을사업은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이것이 단순한 농촌개발 사업이 아니라 공장·도시·직장 등 한국 사회 전체의 근대화 운동으로 확대·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새마을 운동은 그 정신적 기조로서 근면·자조·협동을 설정하게 되고 그 추진 방법으로서는 우수한 지도자의 헌신적 봉사를 기조로 하고 동시에 정부에 의한 적극적인 지원이라는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새마을 운동은 대통령의 절대적인 후원과 우수한 남녀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정부(공무원과 정부지원)라는 3자의 연합이 핵을 이루면서 추진된 국민운동이었다. 새마을 운동은 초기에는 단순한 농가의 소득 배가 운동이었지만 이것을 통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면서부터는 도시·직장·공장에까지 확산되어 근면·자조·협동을 생활화하는 의식개혁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운동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선진국대열에 꼭 진입해야 한다는 의지를 국민들에게 강하게 심어준 정부 주도로 국민적 근대화 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새마을 운동은 1969년의 3선개헌, 1971년의 대통령 선거와 비상사태선포, 그리고 1972년의 유신헌법 통과와 같은 권위주의 정권의 형성과정에서 진행되었으며 새마을 운동의 본격적 전개가 유신체제와 더불어 진행되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새마을 운동이 초기의 농촌개발사업에서 출발하여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엄청난 물량적·정신적 성과를 얻어가면서 점차 비농촌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이 과정에서 물량적인 건설사업을 넘어 정치적 운동으로까지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새마을 운동의 정치적 의미가 중요시되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점차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는 상황을 농민과 서민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유신체제를 지속시키기 위한 정치적 돌파구로 새마을 운동을 추진하였다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정치적 의미가 어떠하든 새마을 운동은 대통령 박정희의 철저한 조국근대화정신의 소산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새마을 운동은 1970년대의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뒤에서 받들어 준 정신적인 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교육입국의 기초를 바로 세우고 탄탄히 하려고 5·16장학회를 통해서 인재양성에 힘을 썼다. 거기다가 기술 입국을 위한 인재 전문 기술자 양성기관인 정수직업훈련원에서 차세대 기술을 전담할 인재들을 양성하였다. 이것이 뒤에 우리나라를 기술 왕국으로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그리고 이와 아울러 국제 기능 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 수상자들을 양산하였다. 삼성, 금성사(현 엘지그룹) 등 재벌그룹들도 정부 시책을 적극협조하고 기술 한국을 만드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독일 광부로서 간호원으로서 엄청난 시련과 모욕을 당하면서 그들의 월급을 담보로 하여 차관을 얻어서 포항제철을 만들었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이것이 결국은 경제 부흥과 중화학공업을 육성시킨 밑거름이 되었으며 땀과 눈물과 끈기로 조국 근대화를 성공시킨 초석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온 국민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일치단결하여 새마을 운동을 전국 농어촌에 불을 붙였다 수출 100억 불 달성하고 방위산업을 일으켜 국방의 한 치의 빈틈이 없는 유비무환의 새마을 정신이 이 나라를 반세기 만에 세계 경제 12권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시켰다. 중국의 등소평은 한국을 배우고 새마을 배우라 했다 우리 민족은 흥이 많고 끼가 많은 민족이며 부지런하고 속도 면에서 칭기즈 칸 기마부대 보다 뒤지지 않는 민족이기도 하다. 골프에서도 우리 딸들이 세계 무대를 주름잡고 다른 스포츠에서도 세계를 놀라게 하고 마침내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로 4강까지 올라간 엄청난 저력을 자랑하였다, BTS가 세계 무대를 휘어잡고 이번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으로 한국 영화의 새 역사를 쓰게 되었다. 거기다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 글자인 한글이 있었다. 세종대왕이 제정한 한글이 문화의 바탕이요, 첨단 역할을 하여 인터넷 강국이 되었다. 9 미국의 골드만 삭스 조사에서 2050년대는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2, 3위권대로 진입한다고 예측하였다. 거기다가 지난해 4월 22일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는 통일 이후 한국의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투자 대상으로서 가치를 높이 평가해오다가 앞으로 남북 경제통합이 이뤄지면 한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까지 했다. 로저스는 이어 여러 변수가 있지만 2020년 말 이전까지 한반도에서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구체적인 ‘통일 한국’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로저스는 남북의 경제통합이 이뤄지면 교통 인프라 부문에서 막대한 투자가 유입되고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대륙횡단철도와 북극 항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국제협력을 가능케 하고 통일 한국에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한 지역에서 추진되는 사업 가운데 가장 유망한 분야는 관광이다. 비무장지대(DMZ)와 나진·선봉 경제특구 등을 직접 방문한 적이 있는 로저스는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총 길이 248㎞, 면적으로는 907㎢로 맨해튼의 10배에 이르는 DMZ 지역은 아름다운 생태계가 잘 보존돼 관광지로 잠재력이 매우 큰 곳이라고 평가하며 서독과 동독을 가르는 국경지대에서 생태관광지로 변신한 ‘그뤼스네반트’ 개발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금강산을 비롯한 동해안 일대도 바다와 산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이점으로 가득 찬 관광지라면서 유라시아 철도가 개통되면 관광지로써 이 지역이 가진 매력은 극대화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밖에 북한이 개발 가능한 광물·자원만 43종에 이르는 ‘자원 대국’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많은 자원을 수입에 의존하는 남한과 인프라와 기술의 부족으로 보유 자원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는 북한 모두에 자원 협력이야말로 ‘궁합이 잘 맞는’ 사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고조하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통일 한국이 기대할 만한 경제적 이익이 많다. 남북한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가스관 부설은 3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사업이다. 한국은 값싼 러시아 가스를 들여와 에너지 수입 비용을 절감하고 수입처를 다변화할 수 있으며 환경 개선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러시아는 전체 가스 수출의 80%가량을 차지하는 유럽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북한은 가스관 사용료를 챙길 수 있다. 한반도에서 가까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가스를 수입해 얻는 운송비 절감분은 3국이 나눠 갖게 될 것이다. 이처럼 남북의 경제통합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작용해 8천만 인구의 통일 한국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을 가볍게 넘어서는 것은 물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다. 10 탈무드가 유대인 교과서라면 새마을 정신은 세계인의 교과서가 되었다. 전 세계 11개국에서 새마을을 연구하고 직접 공부하러 한국에 오는 발길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음이 이를 입증한다. 그래서 이 책은 세계인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새마을 정신과 탈무드 정신에 관련된 보석 같은 자료들을 집대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 수십 권으로 담아야 할 것이다. 수십 권이 완간되어야 탈무드와 새마을 정신의 전모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1권은 물론 어느 한 권만 읽으면 마치 조각보의 일부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기 바란다. 그럼에도 여기 담은 자료들은 그냥 단순한 자료가 아니라 팩트 중심의 사료들이란 점이 매우 중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11 필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가까운 거리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더러는 정치적인 일도 하고 더러는 정치와는 한발 물러서서 주로 정수장학회 관련된 일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특히 새마을 운동과 새마을 정신에 관련된 자료를 찾고 모으는데 내 생애를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출간하여 새마을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각종 자료와 핵심들을 집대성하는 이 작업이 나의 평생의 과업이라 생각한다. 내가 평생동안 모은 자료와 원고들을 책으로 묶는 작업을 하려고 출판 전문가에게 보여 주었더니 원고의 양이 대충 20권의 책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한두 권도 아니고 자그마치 20여 권의 책이 될 정도라면 한 마디로 나는 너무 미련한 사람이 아닌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탈무드가 유대인의 교과서라면 새마을 정신은 한국인의 교과서이다.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이미 전 세계 110개국에서 새마을 운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해마다 수많은 사람이 새마을 운동과 새마을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 우리나라에 몰려들고 있다. 개발도상국은 물론 빈민국일수록 새마을 정신은 한시바삐 배워야 할 정신적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새마을 정신은 세계인의 교과서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미 새마을 운동을 배우고 있는 110개국은 하루속히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기 가난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탈무드가 유대인들이 수천 년 동안 머리맡에 두고 한시도 잊지 않고 경전처럼 소중히 여기면서 공부하는 지침이 되었듯이 새마을 정신도 이제 세계인의 정신적 지침서이자 부국강병의 교과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다가 후학들이 새마을 정신을 계속 연구 발전시켜 세계인의 교과서이자 경전으로 칭송받기 바란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직접 간접으로 성원을 해주고 도와준 새마을중앙회 정성헌 회장, 대한노인회 김호일 회장, 새마을중앙회 조재범 연수원 부원장, 전 새마을연수원 이정렬 원장, 전 라이온스 박광식 총재 등 고마운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교정 교열에 힘써주신 넥센미디어 김흥중 편집국장님과 선뜻 출간을 결정해준 배용구 대표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우리 집 내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잠깐 사업을 한 것 이외에는 어설픈 선비정신으로 별난 애국자인양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배운 청렴, 정직, 근면을 실천하느라 돈 버는 것과는 먼 생활을 했다. 이런 남편의 건강을 챙기고 집안일을 꾸리고 자녀교육을 뒷받침하느라 한없이 헌신한 그녀의 사랑에 감사한다. 어쩌면 이 책의 출간이 내가 평생 동안 진 사랑의 빚의 일부라도 탕감받게 될 것 같아 기쁘다. 고등학교 소년이었던 내 손을 꼭 잡아주면서 칭찬과 격려를 해 주셨던 박정희 대통령께 다시 한번 큰절을 올린다. 2021년 1월

-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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