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학교 명예교수. 1967년 서라벌 예술대학교에서 김동리, 이범선 교수에게서 단편소설을 배우고 졸업하였으며, 소설을 잘 쓰려면 철학을 공부해야한다는 조언을 듣고 1986년 고려대학교 철학과에서 헤겔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여자대학과 강원대학교에서 철학과, 영상학과 교수로서 미학, 영화를 강의하고 정년퇴임했다.
19세기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긴 소설이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었다. 20세기에는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단편소설이 모든 사람의 식탁에 펼쳐졌다. 행동적이고 바쁜 미국인들은 짧은 시간 안에 결말을 보고 싶어했다. 그렇게 100년이 지나자, 단편은 문학이라는 요리의 주된 자료가 되어버렸다.
저자는 짧은 소설이 예상보다, 맛있고, 영양가 있고,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단지 군침을 삼키며 식탁으로 다가온다면, 가벼운 수저놀림만으로 일상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미국신문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있었다.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안 신었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글을 보고 이것이 가장 짧은 단편소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광고문자의 배후에서 어떤 스토리를 읽었고, 그래서 정당하게 이 여섯 글자는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이 되었다.
물론 요리는 사람마다 다르고, 달라야한다. 그러나 단편읽기는 즐겁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며, 하면 삶이 빛나기도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저자는 오랫동안 문학, 철학, 영화를 읽었고, 긴 시간 젊은이들과 토론해왔다. 언제나 결론은 여전히 우리 시대는 짧은 소설의 시대이며, 그것을 즐기는 것이 우리만의 권리이고 의무라는 것이었다. 아직 20세기의 단편은 따듯하다. 식탁으로 다가오시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