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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황진우재(眞愚齋) 양황(梁榥, 1575∼1597)은 함양 출신으로, 자는 학기(學器)다. 그는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기록은 그다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여러 곳에 산재한 그의 행적을 찾아 유추해 보면 그는 상당한 문재(文才)를 지닌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스승이었던 우계(牛溪) 성혼(成渾)은 양황에 대해 “양 모(梁某)의 재기는 평범하지 않으며, 학문과 문장으로 힘써서 그의 문장은 참으로 대문장가의 솜씨다”라고 극찬했고,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는 “크고 넓구나. 만약 성취한다면 세상에서 드문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며 그의 장래를 크게 기대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은 양황이 전장에서 지은 시가 발군이라 “일시의 뛰어난 선비들이 문채로 복종하며 비록 이름이 알려진 자라 할지라도 사귀기를 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평했다. 양황의 벗인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는 양황의 감식안(鑑識眼)은 ‘하늘이 감춘 것도 간파할 만큼 뛰어나다(破天藏)’고 시에서 말했다. 그러나 양황은 안타깝게도 그 재능을 다 꽃피우기도 전에, 1593년 2월에 있었던 제4차 평양성 전투에 참여해 입은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22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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