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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사냐? 쓸모없고 말도 못 하고 친구도 없고 늘 괴롭힘만 당하잖아. 왜 살아?" (101쪽) '나'는 말더듬이이다. 사람들은 말을 못하는 사람은 할 말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아이큐도 낮을 거라고 생각하고, 소리를 내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나는 잘해주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 한 손을 내밀면 두 손을 내미는 사람, 껴안아 주면 녹아버리는 눈사람 같은 사람. 이제 열네 살인 나는 다짐한다. "나는 친절한 사람을 싫어하겠다. 나는 잘해 주는 사람을 미워하겠다. 바보 멍청이 똥 같은 놈아.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9쪽) 완연한 청소년이 된 나는 이제 예전처럼 바보 같은 어린이로 다른 사람들 앞에 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나 사랑해버리고 아무에게나 기대해버리지 않을 것이다.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는 것 같다. 엄마는 자꾸 이상한 남자를 만난다. 남자들은 엄마를 때리고 내 일기를 훔쳐보고 나를 모욕한다. 말더듬이인 걸 알면서도 국어 선생님은 자꾸만 24번인 나를 불러세워 책을 읽게 시키고 내게 굴욕감을 안긴다. 이런 내가 어떻게 또 바보처럼 사람을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 "천천히 말해. 차분하게 말해 봐. 떨지 마. 용기를 내!" 나를 응원하는 언어 교정원 원장 선생님을. 국어 선생님에게 복수를 해주겠다고 함께 계획을 짜주는 학원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 '루트'와 '곰곰이'를. 어린 딸에게 말을 더듬는 버릇을 가르치지 않기 위해 교정원에 다니는 아저씨를, 계피 사탕을 주곤 하는 조금 이상한 할머니를. "웃게 만든 다음 울게 만들 거잖아. 줬다가 뺏을 거잖아." (21쪽)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도 굳게 닫힌 마음이 기어이 녹고 마는 순간. 시인 이제니의 추천처럼, "그 마음들 곁에서. 이상한 위로를 받는 동시에 말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어"진다. <바벨>등의 작품을 통해 '말' 그 자체에 대한 관심사를 꾸준히 드러낸 소설가 정용준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운 한 내성적인 수다쟁이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말하기와 글쓰기, 그 사이에서 누군가 외친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 이제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