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이야기의 출발점"
사람 이름 뒤에 붙었을 때 가장 묵직한 충격을 주는 단어가 '자살' 아닐까. 이 단어는 중력이 커서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자살자가 생전에 했던 말들, 그의 삶, 죽음에 대한 애도, 그리워하는 방식까지도. 자살은 존재를 덮고 금기의 이미지만을 부각시킨다. 산 자들은 말을 잃는다. 사이먼 크리츨리는 이 오랜 침묵 앞에서 질문한다. "우리가 때로 삶을 끝내기로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 논의할 때는 왜 그 복잡성을 박탈"당해야 하는 거냐고.
그는 이 책에서 자살을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을 살펴보고 자살에 관한 금기의 근원-기독교적 관점, 공동체에 대한 의무-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살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데, 자기소유권에 근거한 '자살할 권리'의 논리에서 맹점을 찾아낸다. 자살에 대한 찬반을 모두 비판하고 나서 그는 유서들을 통해 여러 형태의 자살들을 살피고 자살과 삶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다.
크리츨리는 이 책을 쓴 동기를 "자살을 둘러싼 어휘를 넓히고, 그 현상을 기술하고 이해할 더 많은 단어를 찾으며, 공허하고 진부한 말보다는 공감으로 자살을 대하는 것"이라고 썼다. 세대나 시대를 쪼개 자살의 추이와 원인을 파악하는 사회학적 연구도 중요하지만, 자살에 대한 해묵은 인식의 변화를 위해 언어를 발굴하는 것이야말로 당장 함께 해나가야 하는 작업 아닐까. 금기의 이미지 앞에서 계속 입을 다물고 있기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세상에서. 이 책은 그 출발점이다.
- 인문 MD 김경영 (202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