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뻔하지 않았던 여자들의 관계"
관계란 단어와 단어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여자들의 관계는 오랜 역사 동안 한두 개의 단어로 손쉽게 정의되어 왔다. 적이나 편 같은 것. 그리고 많은 다른 여자들처럼 나도 이것이 거짓말인 줄은 진즉에 깨달았다. 여중, 여고, 여대 사회는 관계의 거미줄로 빽빽했고 그중 어느 것도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숨 막힐 정도로 벅찬 관계들 속에서 멋짐, 슬픔, 우울, 억울, 충만, 기쁨,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매일매일 마주하며 인생을 채워왔다. 이 생생한 삶의 체험 앞에서 다른 이가 굳이 정의하려 하는 여성의 삶에 대한 진실은 무력했다.
여자들의 관계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야 적극적으로 조명 받기 시작하지만. 권김현영은 이번 책에서 대중문화에서 다룬 여자들의 사회를 탐구한다. 영화, 소설, 드라마, 예능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았거나 더 사랑받았어야 마땅했던 작품들을 '여자들의 사회'라는 분석틀로 흥미롭게 재해석한다. '윤희에게', '청춘시대', '고양이를 부탁해', '스트릿 우먼 파이터' 등의 작품들에 등장한 인물들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행간마다 내가 겪어온 수많은 여자들과의 관계가 함께 피어난다. 캐릭터들의 얼굴과 내 삶에 발을 들였던 인물들을 나란히 떠올리면 왜 자꾸 뭉클해질까. 즐거운 예측 하나 하자면, 이 책을 읽고 모인 여자들의 북클럽에서는 밤이 새도록 이야기가 그치지 않을 것 같다.
- 사회과학 MD 김경영 (2021.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