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데 없던 학창 시절의 경쟁, 성인이 되고 나서 그때를 돌아볼 때의 반응은 크게 두 분류로 갈리는 것 같다. 그 잔혹한 시절을 통과해냈다는 데에 대한 '괴로움의 훈장'같은 성취감, 혹은 십수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악몽을 꿀만큼 독한 기억. 물론 둘 모두인 경우도 있다. 인생의 짧지 않은 시기를, 더군다나 자아 형성의 코어가 되는 시기를 경쟁과 압박이라는 갈고리에 갈기갈기 찢기며 보낸 이들의 마음엔 그 흔적이 오래, 진하게 남는다. 마음의 균열은 그저 흉터로 조용히 남아있지만은 않는다. 훈장 같은 성취감은 오만함으로 변질되기 쉽고, 독한 기억은 모멸감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김누리 교수는 그것이 한국 사회의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사회, 그럼에도 더한 불평등을 요구하는 시민들, 끝없는 자기 착취, 자살률 1위...
그렇기에 이 책은 표면적으로 한국의 교육에 관해 말하는 책이지만 근본적으로 교육 너머,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할 변화에 관해 말하는 책이다. 그는 한국 교육의 비정상적인 경쟁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질문한다. 우리가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거나 '당연하다', '자연스럽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근거를 따져 물으며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꼬집는다. 그는 독일의 교육과 한국의 교육을 비교하며 다른 가능성을 알려주고 시야를 트이게 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대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교육도, 사회도 이미 벼랑 끝으로 몰렸다는 감각이 엄혹하게 다가온다. 그 절망감을 동력으로 바꿀 수 있는지의 여부가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오직 희망 없는 자들을 위해 우리에게 희망이 주어져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