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유대계 지식인이자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1892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빌헬름 제국 말기의 계급적 갈등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유복한 시민 가정의 보호막 안에서 유년기를 보내다가 청년기에 자신이 속한 계급의 고루한 도덕과 억압적 사회 구조를 체험하며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당시 청년 운동에 고무된 그는 대학에 진학하여 학생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전쟁에 열광하는 사회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청년 운동에 등을 돌린다. 학업에 전념하고자 스위스로 피신한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 비평 개념」으로 베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그 뒤 대학에 자리를 잡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자유 기고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잡지와 신문에 다양한 글을 발표하는가 하면 『독일 비애극의 원천』과 아포리즘 모음집 『일방통행로』를 출간한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파리로 망명한 그는 사회 연구소(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던 테오도르 W.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생계를 이어 가면서 『사회 연구지』에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과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와 같은 분량이 큰 에세이들을 발표한다. ‘19세기의 원사(原史)’를 구성하고자 한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1940년 나치를 피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도시 포르부에서 자결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13년간 매달린 프로젝트로서 미완의 대작으로 남는다. 벤야민은 생전에 거의 무명의 작가였다. 그가 널리 읽히기 시작한 것은 사후 30년이 지난 68혁명 무렵부터였다.
벤야민이 청년기부터 품었던 생각은 위기에 처한 유럽 문화를 유대 정신으로 완성하고 구제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혼란기를 거쳐 파시즘이 등장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전야에 유럽 문화의 파국적 몰락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것으로의 전환’을 이룬 1920년대 중반부터 그는 초기의 형이상학적·신학적 사유를 역사적 유물론의 사유와 결합한 독특한 사유를 펼친다. 그러나 초기의 글들에도 후기에 전유한 유물론적 사유의 맹아들이 이미 다분히 함축되어 있다. 대학에 자리를 잡으려던 계획이 무산된 뒤 글쓰기가 유일한 생존 수단이 된 그가 취한 입장은 그 자신의 표현대로 ‘좌파 아웃사이더의 입장’, ‘문학 투쟁의 전략가’였다. 이러한 비판적 입장의 바탕에는 그 무렵 지식인들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한 냉철한 성찰이 깔려 있다. 이때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유물론을 ‘인간학적 유물론’으로 특징짓는데, 1920년대 이후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이러한 방향의 사유가 훗날 그의 사상이 거듭 주목받게 되는 요인이 된다. 그가 생전에 교류한 사람은 아도르노, 에른스트 블로흐,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이다. 특히 아도르노는 벤야민의 후배이자 친구로서 훗날 그의 정신적 유산을 관리하게 된다. 아도르노는 벤야민의 유대 정신을 지켜 주는 보루였던 또 다른 친구 게르숌 숄렘과 함께 벤야민의 『편지 선집』과 『발터 벤야민 전집』을 출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생전에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라고 자처하기도 하고, 비범한 사변적 능력과 고도의 문학적 문체가 결합된 많은 비평문을 남긴 벤야민은 문예학, 예술학, 미학, 철학,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매체 이론 등의 분야의 후학들뿐 아니라 아니라 작가, 예술가, 영화감독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초기의 벤야민에게 비평의 기관은 철학이었지만, 이후의 글쓰기는 고도의 정치적 실천의 의미를 띤다.
초기 벤야민의 화두는 ‘경험이란 무엇인가’, ‘역사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왜 역사에서 신화적 폭력이 반복되는가’,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등이다. 이 물음들은 필연적으로 각 시대에 대한 역사적 경험, 그리고 오늘날 역사를 구성하는 주체에 대한 정치적 물음과 연결된다. 역사 인식을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객관적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시간’ 또는 ‘인식 가능성의 지금’의 시각에서 구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인식을 그는 ‘역사적 경험’을 단자(單子)와 이미지로 전해 주는 예술·문학·철학 분야의 문헌을 천착하면서 추구한다. 초기에 주로 고전적 텍스트를 해석하는 작업에 치중하던 그는 당대의 인문학과 사회 과학 분야의 신간들에 대한 서평으로 점차 작업 반경을 넓혀 가는데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몰두할 때에는 파리 국립 도서관에 소장된 19세기 이래의 문화 관련 문헌 전체로 대상이 확대된다. 아도르노는 벤야민의 사상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벤야민 선집』(이하 『선집』) 5권에 수록된 에세이 「운명과 성격」부터 읽을 것을 권했다. 벤야민이 추구하는 역사 철학적 인식의 핵심과 함께 그의 사유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벤야민이 국내에 처음 소개될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잘 알려진 글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선집』 2)부터 시작해도 좋다. 벤야민의 가장 중요한 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이 논문은 현대 예술론인 동시에 매체(영화) 이론이자 지각과 경험에 관한 이론으로서 벤야민의 전 사유 모티프가 어우러져 있는 글이다. 게다가 현대 이래 급속히 변해 오면서 우리의 삶과 지각 방식을 각인하고 있는 매체 환경과 대중의 시대에 달라진 예술의 가치와 사회적 기능을 성찰한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오늘날 독자의 경험과 관심에도 부응한다. 또한 이 글은 그 전에 쓴 에세이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이어지기에 이 에세이와 함께 읽으면 좋다. 이와 함께 현대에 들어 심화되어 온 서사(敍事)의 위기 상황을 흥미롭게 서술한 에세이 「이야기꾼」(『선집』 10)을 이 에세이의 대상인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이야기(소설)들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그 밖에 기지가 번득이는 『일방통행로』의 아포리즘들을 순서에 개의치 않고 읽으면서 그의 글쓰기 방식과 사유 모티프에 친숙해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벤야민은 평생 안정된 직장과 직업을 가져 보지 못했다. 그의 사상은 19세기 말 빌헬름 제국에서 시작하여 제1차 세계 대전과 바이마르 공화국을 거쳐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는 굴곡이 많은 독일 현대사를 체험하는 가운데 그 스스로 부르주아 계급에서 룸펜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면서 형성되고 전개된 것이 특징이다. 이 점에서 벤야민 평생의 친구이자 20세기 유대 신비주의 분야에 괄목할 연구 업적을 낳은 숄렘이 쓴 회상록 『한 우정의 역사 ? 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를 함께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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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사유는 초기부터 언어 철학과 역사 철학이 맞물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후기에 사진과 영화와 같은 새로운 매체를 연구할 때에도 이러한 기조는 변하지 않는다. 둘째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벤야민 사상의 핵심인 이 언어 철학과 역사 철학에 접근해 본다. 우선 언어에 대한 기본 성찰을 펼친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번역자의 과제」, 「유사성론」(『선집』 6)을 권한다. 그리고 역사 철학이 집약된 글로 벤야민의 마지막 글이기도 한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일명 「역사 철학 테제」, 『선집』 5)와 관련 노트에 도전하면 좋다. 또한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노트 묶음 「N ? 인식론에 관해, 진보 이론」도 이 글과 연관되기에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벤야민 연구자 미하엘 오피츠와 에르트무트 뷔치슬라는 2000년에 펴낸 『벤야민의 개념들』에서 벤야민의 주요 개념들로 유사성, 알레고리, 아우라, 파괴/구성, 변증법적 이미지, 경험, 기억, 에로스, 깨어남/꿈, 이야기하기(서사), 역사, 이념, 비평, 예술 작품, 신화, 파사주(아케이드), 구제, 혁명, 수집가, 운명, 언어, 신학, 인용 등 스물세 가지를 든다. 두 편집자는 여기에 거리 산보자, 원천, 번역, 표현, 진리, 회상, 행복 등을 추가할 수 있다고 밝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개념들로 정치와 기술이 있다. 우리는 이 개념들이 그의 모든 글에서 맥락을 이루면서 거듭 등장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독서해 나가면 좋다. 다른 사상가와 견주어 볼 때 벤야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첫째, 초기의 사유가 나중에 일부 변형을 거치기는 하지만 후기까지 지속된다는 점, 둘째, 이 사유는 그가 그때그때 비평에서 다루는 작가나 작품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이루어진다는 점, 셋째, 거듭 등장하는 사유 모티프들이 글마다 그물망처럼 펼쳐져 있다는 점이다. 특히 뒤의 두 특징 때문에 벤야민의 사상은 접근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바로 그 특징 때문에 그의 글들을 읽어 가면서 사유 모티프들이 섬세하게 연결되는 것을 흥미롭게 추적할 수 있다. 즉 그의 글들은 입문할 때 어렵더라도 읽어 가면 갈수록 진국이 느껴진다. 예컨대 앞에서 언급한 「운명과 성격」에서 전개된 언어, 죄, 법, 정의, 종교, 비극, 신화, 생명과 같은 개념과 현상에 대한 성찰은 방점을 달리하면서 「괴테의 친화력」(『선집』 10)이나 「폭력 비판을 위하여」(『선집』 5), 더 나아가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다시 펼쳐지며, 훗날 다른 글들(「프란츠 카프카」 또는 「카를 크라우스」)에도 거듭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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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초·중기 주저는 바로크 시대 비애극과 알레고리를 천착한 『독일 비애극의 원천』이고, 후기의 주저는 『아케이드 프로젝트』이다. 이제 이 두 주저가 마지막으로 도전할 텍스트이다. 이와 함께 벤야민이 집중적으로 연구한 작가들로 보들레르(『선집』 4), 프루스트(『선집』 9), 카프카(『선집』 7, 미간), 보들레르(『선집』 4), 크라우스와 브레히트(『선집』 8, 미간)에 대한 비평문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선집』 3)을 읽을 것을 권한다. 벤야민 스스로 유년기를 보낸 이 시기가 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천착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두 저작은 긴밀하게 연관된다. 벤야민은 텍스트에 대한 주해에서 문헌학이 기초 과학이자 방법이라면 19세기 현실에 대한 주해에서는 ‘신학’이 그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신학과 유물론이 정치의 표지 아래 결합하고 있다. 특히 2001년 9.11 사태를 기점으로 열린 ‘테러의 시대’, ‘테러와의 전쟁의 시대’에 벤야민의 정치 철학적 에세이 「폭력 비판을 위하여」가 다시 주목받아 왔는데, 이 에세이에서도 폭력 현상이 신화, 법, 정의, 신학, 정치의 모티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고찰되고 있다. 이 에세이에서 ‘정치’나 ‘신적 폭력’이라는 개념이 아직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다면, 나중에 역사 철학 테제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이 개념과 모티프들은 유물론적 정치의 맥락에서 심화되고 구체화된 형태로 발전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모티프들을 중심으로 벤야민의 사상이 최근 이론가들에 의해 거듭 참조되고 재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남겨진 시간』, 자크 랑시에르의 『문학의 정치』, 데이비드 하비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수전 벅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슬라보예 지젝의 『죽은 신을 위하여』, 『폭력이란 무엇인가』, 야콥 타우베스의 『바울의 정치 신학』 등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이처럼 형이상적·신학적 사유가 유물론적·정치적 사유와 역사 철학적으로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벤야민 사유의 특징인데, 그 연결 고리는 무엇보다 언어, 예술, 기술과 같은 매체들이다. 전승되어 왔거나 당대에 생산된 여러 언어적 자료들에서 그가 천착하고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예술과 문학의 본질이나 운명이 아니라 오늘날 그 자료들에서 읽어 낸 역사적 경험과 인식이다. 그의 모든 비평문과 에세이에서 이 연결 관계를 추적할 수 있고, 그 점이 바로 그의 사상이 지닌 인문학적 토대와 현재성을 드러내 준다. 우리가 벤야민을 읽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의 사상을 통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좌표를 읽고 행동하는 데 지침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컨대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같은 경우도, 이 저작의 독서를 통해 얻은 인식과 방법을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적용하여 나름대로 역사적 경험을 구하는 작업을 시도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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