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은 1953년 3월 5일 미국 미네소타 주 미네아폴리스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브랜다이스 대학에 입학, 정치학과를 수석 졸업한다.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된 후 영국 유학을 통해 학문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옥스퍼드 밸리올 대학에서 정치 이론을 집중 연구하며 여러 정치 철학자와 교분을 쌓는다. 특히 공동체주의자인 찰스 테일러와의 만남은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 힘을 싣는 계기가 된다. 1975년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0년 이후 하버드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샌델의 국제적 명성은 하버드 대학의 ‘정의’ 강좌에서 비롯되었다. 국내에 그의 이름이 알려진 계기도 이 강좌가 시발점이 된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서이다. 이 강좌는 20년 동안 하버드 대학에서 15,000명 이상이 수강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는다. 그중 2007년 가을 학기에는 총 1,115명이 등록해 하버드 대학 역사에 기록을 남겼다. 그의 인기 비결은 암기 위주의 학습 방법을 과감하게 탈피한 데 있다. 그의 토론 수업은 소크라테스 대화법을 모방하여 학생들의 지적 자극을 촉발한다고 평가받는다. 지금도 생명 윤리, 시장과 도덕의 역할, 자유주의 정의관 등을 망라하는 다양한 주제로 세계 곳곳에서 대중 강연을 하고 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생명 윤리 대통령 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샌델의 저서를 읽어야 할 중요한 이유는, 그가 서구 현대 정치 철학의 지배적 정치 이념인 자유주의의 비판자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근대성 형성에 크게 기여한 자유주의 정치 철학은 참여적 자유를 강조하는 고대 정치사상과 다르게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한다. 이 같은 사조는 로크, 홉스, 칸트, 밀로 대변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근간이며 서구 근대성은 물론 일본과 중국의 근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밀의 자유주의 정치사상은 아직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샌델의 주요 관심사는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수정, 변형된 현대판 자유주의다. 그의 주요 비판 대상은 현대의 대표적 자유주의 철학자 존 롤스다. 칸트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롤스는 사회 선택 이론으로서 공리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한다. 샌델은 이런 비판의 타당성에 동의하지만 롤스의 철학 이론에 숨어 있는 전제들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침을 가한다. 그의 첫 저서인 『정의의 한계』(원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는 롤스 이론에 대한 체계적 비판의 저작으로 간주된다. 샌델의 비판은 두 갈래로 나뉜다. 첫 갈래는 자유주의 정치 철학의 문제점을 집중 거론하는 대목으로, 이 과정에서 ‘공동체주의’로 알려진 철학적 대안을 제시한다. 권리 중심적인 자유주의 사상에 반대하면서, 특정 공동체의 의미와 결부될 수밖에 없는 주체의 정체성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두 번째 갈래는 1990년대 이후 두드러지는 경향으로, 공화주의 정치 철학을 제안한다. 현실 대안적인 철학을 모토로, 민주주의 시대에 적합한 ‘공공 철학(Public philosophy)’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미국 건국 초기 융성했던 공화주의 사상에서 그 가능성을 찾는다.
샌델의 문제의식은 자유주의 시대 현안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출발한다. 그는 사변을 위한 사변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철학적 태도를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접근법처럼, 그의 방법은 윤리와 정치 문제 사례에서 출발하여 그 다양한 접근 방법을 살펴본 후, 사태에 대한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버드 ‘정의’ 강좌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의 관심사는 현실적인 사건이 어떻게 윤리적·정치적 문제와 연결되는지 보여 주는 데 집중된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책이 2012년 출간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이다. 자유주의 사상(여기에는 공리주의와 자유 지상주의도 포함된다)은 개인의 선택 능력을 남다르게 강조한다. 자유주의 사상에 따르면 개인의 선택 능력은 모두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 시장에서 자발적인 선택에서 나오는 교환 행위도 동일한 이유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자유 지상주의자들은 그 전제의 극단을 취하면서, 시장에서 자유로운 교환을 막는 정부의 규제는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재와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논리는 이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 책에서 샌델은 선택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시장에서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다는 주장에 반기를 든다. 시장에서 사고팔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인격성을 담보하는 신체, 지구 상의 희귀종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신체를 훼손하거나 희귀종의 멸종을 초래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도덕은 이와 같은 규제의 근간이며, 미래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지지대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샌델의 철학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핵심적 주제는 정치와 도덕의 역할이다. 현대 사회에는 상대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샌델은 상대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공공선의 정치 철학을 제시한다. 공공선에 의거한 도덕은 또한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대안이기도 하다. 정치는 유명무실해진 도덕을 복원하고, 함께 살아갈 이유를 찾는 과정이다. 샌델은 도덕을 공동체의 기반으로 받아들이면서, 주요 저작을 통해 상실된 도덕의 복원을 꾀한다. 이런 맥락에서 『왜 도덕인가』,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는 구체적인 현대 사회의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책들이다. 여기서 매우 독특한 그의 접근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도덕적 교화나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 내기보다는 철저히 지성적인 작업을 독려한다는 것이다. 그의 의도는 독자 스스로 사고 훈련을 통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소크라테스 대화법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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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지배적인 사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모든 문제는 그에 합당한 시선과 관점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정치사상이 문화적 배경을 떠나서 이해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현실 문제는 기존의 관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전통에 대한 비판적인 작업 없이는 현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정의’ 문제가 그렇다. 따라서 우리의 시대는 다음 물음들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왜 정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왜 자유와 평등이 아니라, 정의를 말해야 하는가. 이 같은 문제들에 답변을 시도하고 있는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작동하는 세 가지 형태의 정의관을 다루고 있다. 효용을 앞세우는 공리주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아리스토텔레스식 목적론적 정의관이 그 기본 틀이다. 하지만 도식적인 이해로는 샌델의 의도를 간파하기 힘들다. 상황에 맞는 정의관을 찾는 것이 샌델의 진짜 의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은 풍부한 예시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독자 스스로 사고를 키울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보 제공을 위한 백과사전식 개론서가 아니기 때문에, 독자의 꼼꼼하고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딱딱한 기존 철학서와 달리 접근하기 쉬워 보이지만 상황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요구하므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공리주의, 자유 지상주의, 자유주의(칸트, 롤스), 아리스토텔레스 정의관의 내적 연관성에 주목한다면 의외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행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국내 독자에게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샌델의 공동체주의 세계관이 간략하게나마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공동체주의가 다수주의 관점의 수용이 아니라는 점,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공공선이 획득 가능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반면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싶다면 『공공 철학』을 택하면 좋을 것이다. 듀이의 실용주의를 받아들여 샌델은 현대 사회의 문제가 그 사회의 공공 철학과 직결됨을 역설한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자유주의에 크게 영향받았고, 그 여파로 국가는 가치 중립적인 태도를 지향한다. 이런 경향은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뚜렷해지는데, 샌델은 당시 시사 정치 토론의 논쟁점을 되짚어 보면서 이런 경향을 비판하고 이를 통해 정치에 필수적인 도덕과 그 담지자로서 시민적 공동체의 역할을 부각시킨다. 민주주의는 절차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그에 상응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하다. 도덕은 이때 요구되는 내용이며, 삶을 제도에 편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 현실에서도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해지면서 서구 자유주의와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샌델의 분석은 우리 정치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중 민주주의 시대에 접어든 우리 입장에서,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해독은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BBC 라디오로 전파를 탄 ‘새로운 시민성 ? 공공선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전망’ 강좌 또한 『공공 철학』 읽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강좌는 2009년 5월 18일(런던), 5월 21일(옥스퍼드), 5월 26일(뉴캐슬), 6월초(워싱턴 D.C.)에 전파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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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철학적 한계를 살펴보고 싶다면, 『정의의 한계』와 『민주주의의 불만』이 제격이다. 샌델의 저서 중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철학적 분석이 가장 많이 담긴 책이다. 『정의의 한계』를 통해 샌델은 롤스 비판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박사 학위 논문을 확장한 이 책은 롤스의 ‘정의론’을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샌델도 롤스의 시도를 평등주의 이론으로서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편익을 가장 적게 제공받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 평등 사회를 이룩하자는 롤스의 생각은 불평등의 제도적 해결과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기대만으로 바라는 현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헛된 기대는 버리고, 현실을 직시해 실현 가능한 생각을 키우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샌델은 롤스 철학의 기본 전제들 가운데 하나, 즉 옳음이 선보다 우선한다는 주장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샌델의 비판은 롤스 주장에 깔려 있는 인간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롤스의 주장 이면에는 매우 특별한 인간관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현실과 유리된 자아는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실 문제를 푸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말하자면 ‘유체 이탈 화법’의 주체는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 내딛고 서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 문제를 풀 수 없다. 더욱이 롤스는 개인의 자유를 신성불가침한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샌델의 입장은 다르다. 개인의 권리는 타고난 것이 아니다. 세상을 살면서 자기 정체성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권리가 요청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계약상황(이 상황을 ‘원초적 입장’이라 부른다)의 주체들은 도덕적 주체로서,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실존적 자아들과 구분된다. 우리들은 특정 지역에 살면서도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모두가 하나가 될 뜻의 공동체를 찾는다. 이 같은 정체성 모색 과정에서 도덕적 가치와 그런 가치를 담고 있는 공동체가 요구되며,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과정이다. 이 과정 안에서 도덕적 논쟁이 제기되고, 우리는 공공선을 모색한다. 『정의의 한계』가 자유주의 정의관의 한계를 밝혔다면, 『민주주의의 불만』은 자유주의에 기반한 미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살핀다. 출판 당시 학계는 물론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얻은 이 책은 1970년대 미국 사회를 지배했던 공공 철학인 자유주의 정치 관행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특히 자유주의 국가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자유주의 국가관에 따르면 국가는 개인의 도덕에 개입해서는 안 되며, 개인의 갈등이 시작되는 도덕적 이슈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 샌델은 국가의 기계적인 중립적인 태도가 도덕적 논란에 포함된 다양한 삶의 가치들을 묻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한다. 낙태 논란이나 종교적 신념 등에 관한 대법원 판례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유주의 정의관에 의거하여 미국 사법부는 정부의 중립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선회하지만, 그 같은 판결은 현실 경험에서 추론된 다양한 삶의 양식과 관점을 무시한다. 도덕은 당대의 문제의식을 표출하고자 하는데, 사법부의 중립적인 태도는 이러한 시대적 문제의식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200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가 제안한 시장 이민법에 대한 샌델의 비판 요지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난민 문제는 철저히 체제 실패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는데, 난민을 마치 노예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난민은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파산당한 인간성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샌델에 따르면 베커의 제안은 국가의 도덕 불감증을 보여 주는 사례인 셈이다. 이 책에서도 샌델은 자유주의 관행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공화주의 공공 철학을 제시한다. 공화주의 공공 철학도 민주주의의 시작점인 자유로운 선택과 의사 결정을 존중한다. 하지만 공화주의 공공 철학에서는 또 다른 점이 강조된다. 그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모색하는 것, 즉 공공선의 모색이다. 따라서 선에 대한 무관심 내지 배제는 자유주의 공공 철학의 치명적인 실수이다. 다양한 도덕적 토론과 갈등은 몰락의 징조가 아니라 성숙한 견해를 찾기 위한 건전함의 징표이며, 오히려 정치 토론의 부재가 건전한 공동체의 진정성 있는 자기 발견과 실현의 가능성을 없앤다. 샌델은 미국 건국 초기 공화주의에서 그 단서를 찾는다. 그는 신념의 차이에도 하나의 이념으로 통합하려고 했던 건국 초기 공화주의 공공 철학의 부활을 꿈꾼다.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을 제도를 세우고, 건건하고 성숙한 시민을 육성하려 했던 시도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이다. 샌델의 시도는 상실된 공화주의의 이미지를 새롭게 복원하는 것이다, 이제 막 자유주의 공공 철학을 수용하는 우리에게는 공화주의 공공 철학의 대안도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외친 바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나오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에서 이 말을 이해하고 싶다면, 또한 우리에게 절실한 이상을 찾고 싶다면, 이 책을 꼼꼼하게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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