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난 슬픔으로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
'나태함과 무기력함, 게으름과 우울은 가장 무서운 전염병'(143쪽)으로 받아들여지는 세계가 있다. 풍요로운 지상이 절멸한 이후 지하 도시로 추방된 인류는 지상으로 다시 돌아갈 날을 위해 효율적으로 노동하며 세계를 위해 복무한다. 평정을 유지하며 노동하기 위해 약물을 섭취하고, 열등하게도 감정을 느끼는 인간은 정신재활원에 가서 갱생해야 한다. '네'가 사라지면 너의 클론이 너의 쓸모를 대신하면 되는 세계. 이 세계에서 슬픔은 유별난 것으로 취급된다. "다 유별나게 억울하고 슬프면 도대체 일은 누가 해?"(231쪽) 이 건조한 대사들에 마음을 다친다면, 아직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있다.
<천 개의 파랑>에서 <랑과 나의 사막>까지, 사라지고 부서진 존재들을 기억하는 이야기로 독자의 손을 잡아온 천선란의 연작 소설. 지하 도시의 여섯 친구들의 이야기를 엮어 사랑과 우정, 애도와 환대라는 낱말의 뜻을 되새기게 한다. <인생의 역사>에 신형철이 인용한 대로,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은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난 것으로 헤아려야 마땅하다. '너'는 너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어떤 대행자로 대체될 수 없다고, 너만의 고유함이 있는 너는 'T7-033구역 지반 붕괴로 노동자 한 명 사망'(230쪽)이라는 건조한 문장에 갇힐 수 없다고 외치는 목소리. 가장 낮은 곳에서, 축축한 틈 곳곳에서 멸종되지 않고 머무르는 이끼들처럼 존재하는 마음이 있다. 아직 우리에게 그 유별난 슬픔이 존재한다면, 바로 그 비효율적인 마음들이 서로를 구할 것이다.
- 소설 MD 김효선 (202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