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장점이라면 어린 시절의 공포감을 뛰어나게 묘사한다는 데 있다. 침대 밑에 있을지도 모르는 괴물들, 숙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을 벌에 대한 두려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대여기한을 넘기고 난 뒤의 죄책감, 성적 호기심과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로부터 유괴 당해 받을 고통 등.
킹은 어찌 보면 사소한 어릴 때의 감정들을 현실화하여 극대화시킴으로 읽는이에게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공포는 형상화된 모습이 무섭다거나 벌어지는 사건이 끔찍해서가 아니다.
킹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 한 켠에 아련하게 침식해 있는 어린 시절 공포의 앙금들을 흔들어 깨워서 자연스럽게 공포심을 유발시킨다. 이런 공포는 오금이 찔끔찔끔 저리지는 않더라도 가슴을 조여오는 공포의 느낌은 시종일관 떠나지 않는다.
<잇>은 바로 그런 킹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이 되어 모두 잊고 지내던 공포가 어느 날 되살아 나면서 이들은 다시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그 때로 되돌아간다.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건 오로지 공포와 함께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들. 킹이 공포의 단계를 넘어 더욱 뛰어난 점을 보여주는 건 바로 이 대목이다.
공포 소설에서 공포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것들을 소홀하기 쉽지만, 킹은 어린 시절의 공포와 소중한 기억을 절묘하게 결합시킨다. 킬링타임용 공포 소설을 뛰어넘어서 다시 한번 책을 펼쳐보고 싶은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은, 킹의 이런 역량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임지호(1999-04-02)